2019년 4월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 첫 방화 현장. 연합뉴스
“저는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의 유족입니다. 이 사건 범인은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픈 사람이라는 말이죠. 제정신이 아니라서 사람을 죽였다니, 저는 ‘나의 어머니와 딸을 왜 죽였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 사람을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어머니와 딸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다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국가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책임을 묻고자 합니다.”(진주 사건 유족 ㄱ씨)
2019년 4월17일 새벽,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안아무개씨가 일으킨 방화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이 26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의 배상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낸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안씨의 방화, 살인으로 5명의 주민이 숨지고 17명이 크게 다친 일이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안씨는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지난해 10월29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범인 안씨가 평소에도 문제를 일으켰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유족을 대리하는 오지원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6년 수락산 살인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등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그때마다 대책이 논의됐으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경찰 등 공무원들이 정신질환 관련 법을 제대로 지키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유족과 오 변호사는 다음 주 중 법원에 정식으로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유족 쪽이 국가배상청구 소송으로 밝히고자 하는 점은 ‘진주 사건은 경찰이 중증 정신질환자를 법에 따라 조처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진주 사건 발생 2년 전인 2017년 5월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의 안전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이 전면 개정됐고, 경찰은 2019년 3월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서 현장에서 경찰관이 대응해야 할 기본조처들을 상세히 규정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경찰과 지방정부는 이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오 변호사는 “범인에 대한 8건의 112 신고 내용을 보면, 주민들이 그의 비정상적인 폭력행위나 언동에 겁을 먹고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 등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거나, ‘눈이 풀려 있다, 말이 안 통한다’는 등의 내용을 전달하고 있어 경찰로서는 정신질환자임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 쇠망치를 꺼내 피해자를 위협한 사건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흉기소지 여부나 가족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전 112신고 이력, 범죄전력, 현재 난동상황 및 약물치료 중단 여부 등을 검토해 전문의 진단 및 보호요청을 할 수 있었지만 8회의 신고를 매우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출동 이후 얌전해진 범인의 말만 듣고 매뉴얼 등에 규정된 조치를 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에는 정신질환자의 가족들도 힘을 보탠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조현병 환자의 가족인 이영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공보이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주 사건은 고의성까지 의심되는 ‘직무 유기’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정신장애인의 범죄가 반복될 때마다 그 가족들도 고통받아왔다”며 “국가의 잘못된 조처로 피해를 본 유족의 심정에 누구보다 공감하기 때문에 가해자 구명운동이 아닌 피해자 손해배상에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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