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사건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각하 결정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파면(탄핵)은 현직이어야만 가능하다는 법률 문언에 입각한 적절한 판단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간 헌법수호 기관임을 자임하며 헌법 해석의 지평을 넓혀온 헌재 역사, 최초의 법관 탄핵 사건이라는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면 책임 회피를 위한 판단 정지라는 비판도 거세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재판관은 유남석(헌법재판소장)·이석태·김기영 재판관 3명에 불과하다. 이들 3명은 임 전 부장판사가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일선 판사들의 판결문 작성이나 공판회부 절차에 개입한 행위에 대해 “법관 독립성 침해”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이 각하 의견을 냄에 따라 이 사건은 다수의견으로 본안 판단까지 이르지 못하고 종결됐다. 5명의 재판관은 현직 판사가 아닌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해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임 전 부장판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이유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심판절차종료 의견을 낸 문형배 재판관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법조인들은 각하 결정이 나온 데 대해 “헌재가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각하가 법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헌재가 그동안 해온 역할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본안 판단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헌재는 재판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본안 판단을 해왔다. 가령 1970년대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 1·2·9호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2013년 3월 위헌 결정을 내린 일이나,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경찰의 행위에 대해 지난해 4월 위헌 확인 결정을 내린 일이 대표적이다. 모두 기본권 침해 행위가 이미 종료된 사안들이지만, 헌재는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헌재 존재 이유에 부합하므로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된다”며 본안 판단을 내렸다.
헌재연구관을 지냈던 한 법조인은 29일 “그동안 헌재는 각하가 원칙이고 본안 판단이 예외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예외를 인정해 본안 판단을 해왔다. 다수의견의 논리가 모순이라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헌재가 보여준 적극성 등을 고려하면 이번 각하 결정은 책임 회피로 보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 판사도 “탄핵은 헌법질서에 심각한 해를 끼친 사람에 대해 헌법적 징벌을 내리는 절차이자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제도다. 특히 법관 탄핵은 (헌정 사상 처음이기 때문에) 헌재가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사건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을 헌재가 마치 개인 사이의 권리분쟁을 다루는 것처럼 취급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이 흐지부지되면서, 대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법관들에 대해 적극적인 징계에 나서지 않았다는 ‘원죄론’, 국회 역시 너무 늦게 탄핵소추에 나섰다는 ‘방치론’ 비판도 다시 일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2018년 10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를 비롯한 판사 13명에 대해 징계처분을 했고(1차), 이듬해 10명의 법관에 대해 추가로 징계청구 했다(2차). 그러나 1차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인 견책 처분을 받은 임 전 부장판사 등은 곧바로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차 징계는 “(관련자들의) 형사재판 절차를 지켜보겠다”며 한 번의 징계심의 후 2년 넘게 추가심의도 열리지 않고 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임기만료 퇴직을 불과 한 달 가량 남기고서야 국회가 법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데 대해서도 “탄핵소추가 더 빨랐으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판사는 “선진 사법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는데 결과적으로 누구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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