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부(CIA) 로고. CIA 누리집 갈무리
미국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이 서울에 별도 사무실을 두고 한국 정보를 수집해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는 해당 기관에서 일하던 한국인 직원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3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마은혁)는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기관인 ‘오픈소스 엔터프라이즈’의 서울 사무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한국인 직원 3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끝내는 결정이다.
소송을 낸 한국인 직원 3명은 저마다 2005~2009년께부터 오픈소스 엔터프라이즈 서울 사무국에서 일했다. 오픈소스 엔터프라이즈는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기관이다. 중앙정보국이 담당하는 국외 정보수집과 그 외 업무의 일부로서 외국 매체가 공적으로 확인하거나 이미 출간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일을 해왔다. 소송을 낸 한국인 직원들은 이곳에서 사용할 국내 정보를 평가, 수집하는 등의 일을 했다.
미국 정부가 국외 및 국제 사안에 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국외에 사무국을 두고 현지 인력을 고용해 이런 일을 해왔으나, 최근 국외 사무국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미디어 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미국 정부의 요구 등을 종합해 현지 시설과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 중앙정보국은 지난해 6월 모든 국외 사무국을 폐쇄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인 직원들도 지난해 2~3월에 모두 해고됐다.
이에 이들은 “해고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미국 정부는 “이 사건 해고가 주권적 활동에 속하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이 소송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해 부적법하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각하 결정을 내리며 사실상 미국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주권국가가 국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외국에 정보기관을 설치할지와 그 사무소에 국외 노동자를 고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고도의 공권적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해고는 미국 정부의 고도의 공권적 결정에 따른 주권적 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주권국가의 공권적 결정에 따라 해고된 근로자를 복직시킬 것을 강요하는 것은 공권적 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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