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한 마약 투약 용의자의 마약 투약 시점과 실제 범행 일시가 차이가 나더라도 수집된 증거를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ㄱ씨가 2018년 8월부터 9월 초까지 필로폰을 투약하고 필로폰을 소지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경찰은 이 내용을 토대로 혐의사실을 작성해 10월8일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같은 달 29일 ㄱ씨를 체포하면서 소변과 모발을 압수했고 검사 결과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ㄱ씨는 수사단계에서 “10월26일 필로폰을 투약한 적이 있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소변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과 자백을 근거로 ‘ㄱ씨가 2018년 10월26일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공소를 제기했다. 압수수색 영장에 있던 ‘8월부터 9월 초까지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내용은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ㄱ씨는 상해 등 혐의로도 기소됐다.
1심은 2020년 7월 ㄱ씨의 상해 등 혐의를 인정하며 징역 1년을 선고했지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공소사실에 있는 필로폰 투약은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을 때 예견할 수 없던 혐의 사실”이라며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 증거를 압수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은 ㄱ씨 자백이 변호인 조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 위법수집증거라고도 봤다. 2심도 2020년 10월 같은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마약류 투약 범죄는 은밀한 공간에서 범인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이뤄져 목격자 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증거수집이 곤란하다는 특성이 있다. 압수수색영장에 따라 압수한 ㄱ씨 소변에 대한 감정 결과에 의해 ㄱ씨가 반복적·계속적으로 필로폰을 투약해온 사실이 증명된다면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 일시 무렵에도 유사한 방법으로 필로폰을 투약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이어 “압수수색 영장은 혐의의 직접 증거뿐 아니라 증명에 도움이 되는 간접증거 내지 정황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소사실 중 투약 부분이 위 압수수색 영장 발부 이후 범행이라고 객관적 관련성을 부정할 것이 아니다”라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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