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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벌써 네번째 돈이 빠져나갔다, 홀린 듯 시작한 후원

등록 2021-11-13 11:28수정 2021-11-13 11:53

[한겨레S] 이런 홀로!? _ 노인급식에 낸 후원
누군들 ‘혼밥의 고단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달(10월)만 벌써 네번째 돈이 빠져나갔다. 6개월 쇼핑 할부금은 아니고 말하기 좀 민망하지만 노인 대상 무료급식 봉사단체 후원금이 네번째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다. 민망할 정도로 적은 액수라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부끄럽다. 또 말하기 민망했던 이유는 순수하게 어려운 이를 돕고자 하는 인류애적 마음에서 후원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인을 공경하겠다는 마음도 아니었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마음도 결코 아니었다. 사실 후원을 결정한 건 의식의 흐름이었고 선의라고 말하기 애매한 내 미래의 불안감에 대한 심리적 투자였다.

부끄럽긴 하지만 왜 의식의 흐름으로 후원하게 됐는지는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다. 위드 코로나 이전 올여름 4단계 거리두기 강화로 재택근무도 역시 연장됐다. 일주일에 딱 한번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사무실에 나오게 됐다. 처음에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이 컸지만 지금은 재택이 아니면 너무나 어색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재택 덕분에 가장 좋은 점은 출근 준비를 위한 1시간, 집에서 회사까지 걸리는 1시간 등 2시간의 시간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혼밥’ 고단함을 달래던 어르신들

다소 여유로워진 근무 전 아침 시간, 어찌하다 보니 아침식사를 하며 즐겨 보게 된 게 오전 8시 안팎에 하는 <인간극장> 프로그램이다. 이 장수 프로그램은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따라라라~’라는 특유의 배경음악과 함께 다음 편을 궁금하게 하는 절묘한 편집에 나도 모르게 드라마처럼 챙겨 보게 됐다. 다양한 이웃이 출연하는데 몇달째 시청하다 보니 하나의 특이사항을 발견했다. 자녀를 서울에 상경시키고 홀로 고향에 남아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부모와 자녀 간에 가장 화두는 ‘밥’이었다. “밥 먹었어?” “나중에 밥이나 먹자”를 인사말로 쓰는 한국인들답게 밥은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인간극장>에 나오는 부모와 자녀의 모습도 그랬다. 섬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정년이 코앞인데 일을 그만두고 내려온 아들, 엄마처럼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모시고 온 직장인 손녀 등의 사연은 감동적이며 따뜻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정을 유지시켜주는 건 바로 밥이었다. 손녀는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방 안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100살에 가까운 노모는 70살을 바라보는 아들이 여전히 애틋하며 자신보다 아들이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신경쓰곤 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혼자 뭉클함을 느낀 나는 아침식사로 겨우 준비한 토스트를 입안으로 우걱우걱 집어넣으며 오첩반상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중얼거렸다.

열심히 밥을 먹던 어느 날 문득 이전에는 없던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혼자 밥을 먹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부모를 대신해 자녀가 식사를 준비했고 숟가락질이 힘든 할머니를 위해 손녀가 대신 반찬을 집어주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 어르신들의 식사는 쉽지 않았다. 원래도 혼밥, 혼술이 편한 나는 재택근무 기간 혼자 모든 걸 해내는 게 완전히 익숙해졌다. 오히려 재택 전 다소 불편한 상사나 동료들과 어울려 밥을 먹는 게 조금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혼밥을 한 적도 종종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경험은 한번 이상은 있지 않을까. 아니라면 뭐 나만 그런 것이라고 하자.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하더라도 좀 더 나이를 먹어도 혼밥과 혼술이 좋을까. 이건 좀 생각해볼 문제였다. 만약 내가 숟가락 들 힘도 없어지면 어쩌지. 아니 그때쯤이면 알약 하나로 영양소와 칼로리를 모두 채울 수 있는 약이 개발되지 않을까. 참으로 끝도 없이 망상이 이어졌다. 어찌 됐든 망상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 혼자 살아가는 건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나와 같은 누군가를 기대하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밥의 고단함은 20여년 전 고등학생 때 내신 관리를 위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을 했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전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배달한 도시락은 3개밖에 안 되는데 몇시간이나 걸렸던 기억이 난다. 도시락을 전해주면 어르신들은 그렇게 고마워하시며 나와 함께 도시락을 배달한 친구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도시락 반찬은 이게 마음에 드네”부터 시작해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지” 등등 고단한 인생역정을 듣다 보면 1시간이 훌쩍 넘어가버린다. 그때는 그저 봉사활동 시간 때우기에 급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르신은 혼밥의 고단함을 어린 학생과 만나 달랬던 것이었다.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은 시간을 채우자마자 끝났다. 어르신들은 이 학생이 왜 안 왔을까 생각했을 것도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죄송하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그 밥의 고단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코로나19라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보며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것을 몸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혼밥이 즐거워도 언젠가 나도 사람의 온기를 느껴가며 밥을 먹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밥을 먹는다’는 최소한의 생존 행위를 힘겹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노인급식 봉사를 검색했고 그중 가장 괜찮을 것 같은 곳에 후원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도 나처럼 생각하고 돕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달려라 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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