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녹색 수의를 입은 청년이 법정에 들어섰다. 크지도 야위지도 않은 보통 체격에 앳된 얼굴의 남성이었다. 그는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다. 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방청석을 둘러보니, 그를 보러 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10월 중순, 서울의 한 법정에서는 공소 사실을 낭독하는 검사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시작은 2천원짜리 알밤사탕이었다. 22살 김종성(가명)씨는 지난 4월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무인편의점에서 사탕을 훔쳤다. 배가 고파서였다. 사탕은 입에 오래 물고 있기에 적합했다. 알밤사탕을 까서 입에 넣으면 오로지 달콤한 맛이 혀와 코에 가득 퍼졌다. 신맛이 전혀 없는 사탕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또 다른 무인편의점을 찾았다. 치킨 등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8월 결국 덜미가 잡혔다. 4월부터 8월까지 그는 10차례에 걸쳐 여러 무인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쳤다. 그가 훔친 음식은 15만원어치였다. 보름에 한 번, 1만5천원꼴로 그는 무인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쳤다.
김씨는 구속됐다. 통상 이런 경우, 당사자끼리 화해하고 물건을 훔친 쪽에서 물건값을 갚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정식 형사 절차를 밟더라도 기소유예 정도로 끝난다. 하지만 김씨는 달랐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검거된 뒤 줄곧 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구속은 견딜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피해자인 한 편의점주는 김씨가 훔친 식료품값 3만8천원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더해 200만원의 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법원은 절도죄에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경우, 직권 또는 범죄 피해자 등의 신청에 따라 배상명령을 할 수 있다.
김씨 변호인은 “검사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배상명령에 대해서는 재판부에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피해품 변상은 준비 중이지만, 배상신청이 들어온 돈은 현실적으로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새터민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탈북 뒤 중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결혼했다. 대여섯살이 되던 해에 김씨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남겨놓은 빚이 많았다. 그 돈을 갚기 위해 어머니는 한국에 입국해 돈을 벌었다. 아버지의 친척들은 김씨마저 한국으로 떠나면 김씨 어머니가 돈을 갚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김씨의 한국행을 막았다. 9년 동안 김씨가 엄마 품을 벗어나 살아야 했던 이유다.
오랜 노력 끝에 어머니는 몇해 전 아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아들은 한국 국적을 얻었다. 가족이 만나 함께 한 기쁨도 잠시,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 없이 사춘기를 보낸 아들의 마음에는 ‘엄마가 나를 버리고 혼자서만 한국에 갔구나’하는 반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다투고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오다 결국, 김씨는 올봄 가출했다.
가출 뒤 김씨는 사실상 노숙 생활을 이어왔다. 이따금 식당 등에서 일용직 등으로 일하고 받은 돈으로 잠자리를 마련했지만, 돈이 떨어지면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취업해 돈을 벌기도 힘들었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중국 친구들이 이따금 위챗 등 메신저로 돈을 보내주기도 했지만, 매번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진 돈이 모두 떨어지고 끼니를 오래 챙기지 못하던 때에 김씨는 주인이 없는 무인편의점에 들어가, 당장의 허기를 달랠 알밤사탕을 훔친 것이었다.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김씨는 자신의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우리 말과 글에 서툴러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최소한의 끼니를 해결하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행한 범행이라는 사정을 헤아려 달라”고 했다. 이어 “김씨가 이제라도 피해자들에게 간절히 사과하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회복하고자 한다. 법이 허용하는 가장 관대한 처분을 허락해 달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재판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김씨는 최후 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처음으로 법을 위반해 이 자리에 섰지만,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일 겁니다. 피해자들의 손해는 꼭 배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주 김씨의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벌금 900만원을 선고했다. “범행 경위와 횟수에 비춰 보면 죄질이 무겁지만, 김씨가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고, 피해 금액도 15만원으로 많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석 달 가량 구속돼 있던 터라 10만원을 1일로 환산해 구속 기간 만큼 벌금에서 공제한 뒤, 남은 금액 50만원가량만 내면 된다. 재판부는 한 편의점주가 신청한 200만원의 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김씨에게 훔친 물건값 3만8천원만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김씨는 즉각 풀려났다. 다만, 그가 남은 벌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미, 겨울은 시작되고 있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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