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이 임명하던 법원장을 일선 판사들이 직접 추천하도록 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확대 시행되고 있지만, 대법원장이 임명한 수석부장판사가 법원장이 되기 쉬운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대법원장 임명권한을 분산해 법관 관료화를 깨겠다는 애초 제도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9년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일선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자 1~3명을 뽑으면 대법원장이 이 중 한 명을 지방법원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지방법원장을 임명하는 하향식이었다. 사법농단 사건은 대법원장 한 명에게 막강한 권한이 쏠리며 발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민주적·수평적 사법행정”을 위해 추천제를 도입했다. 현재 전국 21개 지방법원 중 대구·대전·부산·광주·의정부·서울동부·서울남부·서울북부·서울회생법원 등 9곳에서 실시 중이다. 내년에는 서울행정법원과 서울서부·수원·전주지법 등
4개 법원에서도 추천제가 실시된다. 김 대법원장 임기(2023년 9월까지) 안에 21개 모든 지방법원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일부 판사들은 이 제도 아래서 임명된 법원장 다수가 해당 법원 수석부장판사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해당 법원에서 인지도가 높은 수석부장판사가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수석부장판사가 결국 법원장이 된다면, 사실상 법원장 인사에 대법원장이 영향을 미치는 셈이라는 것이다. 22일 <한겨레>는 지난 3년간 추천제로 법원장에 임명된 법원장 11명의 이력을 살펴봤다. 지난해 임명된 서울동부지법원장, 올해 임명된 의정부·서울북부·부산지법원장, 서울회생법원장 등 5명이 같은 법원 수석부장판사였다가 곧바로 법원장이 됐다. 추천된 후보를 거부하고 김 대법원장이 직접 임명한 2명에 이들 5명까지 더하면 추천제 법원장 11명 중 7명이 여전히 대법원장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임명된 셈이다.
각급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최근 법원장 후보 추천제 관련 보고서에서 “대법원장이 지명한 수석부장판사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문제가 있다. 제도가 형해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판사 중에서 일방적으로 법원장을 임명했던 과거에 비해 (후보 추천제가) 진일보한 제도인 것은 맞다. 그런데 지금처럼 대법원장이 임명한 수석부장판사가 법원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 법원장 되는 사람이 고등부장에서 지방법원 부장으로 바뀌는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게 된다”고 했다. 반면 최근까지 법관으로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수석부장판사가 일선 판사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평가도 많이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되레 불리할 수도 있다. 반드시 수석부장판사에게 유리하다곤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제도 보완 요구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진준오 공보관은 “후보로 추천됐던 판사 중에 법원장은 아니더라도 수석부장판사로 보임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수석부장판사 임명에 일선 판사들의 의견이 간접적으로 반영된다는 취지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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