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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세훈의 ‘폭주’, 산산조각 난 서울시 ‘거버넌스’…다 이유가 있다

등록 2021-11-25 16:36수정 2021-11-25 18:17

[한겨레21] 오세훈의 서울시 바로 세우기 논란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 27건 감사·조사…내년 예산 46.5% 삭감
서울시 “제대로 안 된 사업 등 바로잡으려는 것”
2021년 11월4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마을자치센터연합,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등 전국 1170여 개 시민·지역·사회 단체 대표와 활동가 70여 명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민단체 폄하와 예산 삭감 중단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2021년 11월4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마을자치센터연합,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등 전국 1170여 개 시민·지역·사회 단체 대표와 활동가 70여 명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민단체 폄하와 예산 삭감 중단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10년 만에 복귀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다시 시민단체,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등과 충돌하고 있다. 오 시장은 10년 전에도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시민단체, 민주당 다수 의회와 충돌하다가 스스로 물러났다. 이번에 충돌하는 화두는 ‘거버넌스’(협치)다. 시민단체는 오 시장이 “거버넌스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오 시장은 “거버넌스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의 오세훈 서울시 체제에서 거버넌스는 요원한 일이 됐다는 점이다. _편집자

“시정이 이미 사유화되어 있어서 이제 바로잡는 것인지, 오 시장이 시정을 비로소 사유화하는 것인지의 판단은 시민 여러분이 내년 선거에서 해주실 것입니다.”(2021년 11월7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페이스북 글)

“전 지구적 흐름 부정하는 퇴행”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단체, 시의회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오 시장은 2021년 9월13일 ‘서울시 바로 세우기’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어 “시민 혈세로 어렵게 유지되는 서울시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지급기)으로 전락했다”며 “지난 10년간 민간 보조금과 민간 위탁금으로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원 가까이 된다.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오 시장과 서울시는 그 사례로 마을공동체 사업은 인건비 비중이 절반을 넘었고, 청년 사업은 시민단체 출신이 부서장으로 임명돼 특정 단체에 집중 지원했으며, 사회투자기금은 2013~2020년 융자금의 28%를 같은 기업에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를 포함해 서울시는 주민자치회, 태양광, 사회주택, 한강 노들섬, 청년활력공간, 플랫폼 창동61 등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과 관련해 무려 27건의 감사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오세훈 시장의 2차 공격은 예산 삭감이었다. 11월1일 오 시장은 2022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 예산을 올해의 1788억원보다 832억원(46.5%) 삭감했다고 발표했다. 분야별 예산 삭감 규모를 보면 사회적경제 47%, 마을공동체 67%, 청년 참여 44%, 도시재생·위탁 75%, 주민자치 66% 등이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방송하는 교통방송(TBS) 출연금도 33% 삭감했다.

시민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서울시 사업에 참여한 300여 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퇴행적인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 준비위원회’(시민행동)는 11월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한솔 준비위 공동운영위원장(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시민 참여를 늘려서 거버넌스를 더 발전시켜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10년 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 시장 집권으로 시민 참여 축소와 청년노동자 해고 등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토론회를 열어 문제점을 고발하고, 내년 지방선거에도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1170여 개 시민단체를 망라한 연대단체인 ‘시민참여와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행동하는 전국 시민·지역·사회단체’(전국행동)도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11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 지구적 거버넌스 흐름을 전면 부정하는 심각한 퇴행이다. 1조원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공개하지 못하면서 전체 시민사회를 비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다. 모든 기록을 다 내놓고 함께 검증하자”고 오 시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서울시는 시의회와도 충돌했다. 11월4일 서울시는 민주당 시의원들이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과 관련해 서울시를 비판한 내용을 정리해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창근 시 대변인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는 논리는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다”고 시의회를 정면 비판했다.

시의회는 11월 하순 시작되는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 심의에서 시민단체 관련 예산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인호 서울시 의장은 “오 시장이 보궐선거로 당선됐고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 정책의 변화는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시장이 나서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적절하지 않고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2022년 지방선거 전초전?

오 시장이 일으킨 이번 사태에 많은 전문가는 비판적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시장이 바뀌었으니 정책 방향이나 예산 규모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조정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인권이나 노동권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은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많다. 시민행동의 이원재 공동운영위원장은 “벌써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민단체들을 공격해 유리한 선거 프레임을 짜려고 한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감사 결과까지 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의 한 의원도 “선출직은 언제나 선거를 생각한다. 그러나 선거를 생각하더라도 일엔 내용이 있어야 한다. 현재 시민단체나 시의회에 대한 오 시장의 공격엔 맥락이 없다.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나 의회에 대해 전혀 파트너십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에 대한 오 시장의 강한 반감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애초 오 시장은 시민단체와 가까웠다. 1992~2006년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고, 2006년 첫 서울시장 당선 때는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현 환경재단 이사장)가 인수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각별했다. 그러나 시장 취임 뒤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등 주요 정책을 두고 시민단체들과 마찰했다. 결국 무상급식 문제로 시민단체, 민주당 다수 의회와 충돌하다가 시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 뒤로 시민단체에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9월16일 ‘서울시 바로 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입장문을 발표한 뒤 민간 위탁과 보조금 지원 현황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9월16일 ‘서울시 바로 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입장문을 발표한 뒤 민간 위탁과 보조금 지원 현황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협치(거버넌스)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 오 시장은 협치를 진보 가치로 보고 시민단체나 민간 파트너를 배제하려고 한다. 이건 민주주의의 후퇴다.” 이동식 서울시 전 협치담당관

이번 사태에서 오 시장이 가장 비판받는 대목은 거버넌스에 대한 몰이해다. 오 시장의 언행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인 거버넌스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과 시민단체를 정책 결정과 집행에 참여시키는 거버넌스는 의회와 행정부로 이뤄진 전통적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널리 운영되고 있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거버넌스는 현재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오 시장은 시민을 주체가 아니라 고객으로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시민은 공무원의 동등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동식 서울시 전 협치담당관은 “협치(거버넌스)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 오 시장은 협치를 진보 가치로 보고 시민단체나 민간 파트너를 배제하려고 한다. 이건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서울시는 거버넌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해명했다. 서울시의 이원목 시민협력국장은 “그동안 거버넌스 사업 가운데 거대 담론만 있고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옥석을 가리자는 것이다. 행정 수요가 다양해지니 거버넌스 사업으로 해야 할 일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 서울시 민생특보도 “거버넌스는 세계적인 추세이고 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다만 그동안 제대로 안 된 사업이나 예산이 잘못 쓰인 경우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시민 의견을 반영해 사업을 정하고 예산을 잡겠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의 거버넌스 정책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서울시 협치자문관과 ‘사단법인 마을’ 대표를 지낸 유창복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교수는 “마을공동체 사업은 구체성이 부족했다. 앞으로 사회적경제나 도시재생, 마을 돌봄 같은 더 구체적인 사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거버넌스 사업도 공무원이 주도해 서류 작업이 너무 많았고, 예산 때문에 1년 단위로 사업을 끊어야 했다. 그런 점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 시절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을 지낸 홍수정 박사(행정학)도 “박 전 시장의 거버넌스 사업은 토건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했다. 근본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실행이 어려웠고 효과도 가시적이지 않았다. 그런 점이 공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호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 상황을 보면, 오 시장과 시민단체·시의회의 충돌은 2022년 6월 지방선거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오 시장 체제에서 이미 ‘거버넌스’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홍수정 박사는 “거버넌스를 하려면 참여자들이 상대와 협력하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선 많은 참여자가 서로 적대적이다. 정당 사이도 그렇고, 시민단체와 공무원 사이도 그렇다. 참여자들이 힘의 균형을 가지고 서로 우호적이어야 한다. 거기서 거버넌스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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