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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정 예절 어디까지?…팔짱·다리꼬기가 법정의 존엄 해치나

등록 2021-11-30 13:59수정 2021-12-01 02:34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다리 꼬지 마세요.”

법정 경위는 지적했다. 사람들 시선이 쏠렸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방청객은 다리를 풀었다. 느닷없이 법정 경위의 지적을 받은 방청객 얼굴에는 난처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8년 차 변호사 ㄱ씨는 지난해 대법원에 재판 방청을 하러 갔다가 이런 상황을 목격했다. “고압적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더라고요. 옷매무새를 다시 고쳤어요. 아마 다른 방청객도 비슷했을 거예요.” ㄱ씨는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 ㄴ씨도 이런 비슷한 모습을 법정에서 봤다. 그는 최근 지방의 한 법원에서 열린 재판을 방청한 적이 있는데, 한 방청객이 휴대전화를 만지자 법정 경위가 그에게 다가가 “휴대전화를 넣으라”고 했다. 모자를 쓴 방청객에게 법정 경위가 “모자를 벗어달라”고 하거나, 방청객들이 웅성거리자 “수군대지 말아달라”고 한 사례도 있었다.

임재성 변호사는 지난 4일치 <한겨레> 오피니언면에 쓴 ‘법정의 존엄과 팔짱?’이라는 글에서 지난 9월30일 법정 방청석에서 팔짱을 끼고 선고를 듣다가 법정 경위에게 제지 당한 경험을 밝혔다. 법정 경위는 팔짱을 끼고 선고를 듣는 그의 어깨를 치고 팔짱을 풀라고 했다는 것이다. ‘법정에서는 (팔짱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 법정 경위의 주장이었고, 그는 관련 규정을 요구하는 임 변호사의 말에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임 변호사는 이 글에서 “방청석에서 팔짱을 끼는 행위가 도대체 재판의 진행에, 법정의 질서유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아무런 영향이 없다. 법대 위에 앉은 판사들을 향해 방청석의 시민들은 공손한 자세를 취해야 하며, 불경한 자세는 안된다는 ‘군기 잡기’일 뿐”이라고 썼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법정을 찾은 이들에게 다소 과한 예절을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법정에서 한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는 만큼 존중의 의미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변호사는 “일상생활에서 자세 등을 지적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보일 수 있지만, 사법정의를 실현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간은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은 자신이 맡은 사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로펌 입사 초년부터 선배들에게 법정 예절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한 대형로펌에 소속된 중견 변호사는 “저년차 때 선배들로부터 법정 예절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기본적인 자세부터 복장, 용모, 말투 등 세세한 부분까지 교정받는다. 자신이 맡은 사건을 판단하는 법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하지만 법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방청객들에게 최소한의 예절은 필요하지만, 법원이 재판과 무관한 방청객의 자세와 모자 착용까지 지적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한 중견 변호사는 “과거와 달리 요즘은 팔짱 끼거나 모자를 쓰는 것을 두고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경위는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방청객을 제재하는데, 근거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과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경위들이 방청객을 제지하는 근거는 법원보안관리대 운영에 관한 예규 제11조다. 이 조항을 보면, 법원보안관리대원(법정 경위)은 법정질서 유지를 위해 다음과 같은 행위를 제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정 안에서 소리 내며 껌을 씹는 행위 △휴대폰 벨소리·옆 사람과 큰소리로 나누는 대화 등 재판을 방해하는 소음을 발생시키는 행위 △재판에 항의하거나 법관 또는 법원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행위 △부채질을 하는 행위 △신문을 넓게 펼쳐보는 행위 △혐오감을 주는 복장 착용 △법정 내에서 코를 골며 잠든 행위 △몸을 젖혀 눕는 행위 △기타 정숙하지 못한 행위 △허가받지 않은 촬영장비의 휴대 및 촬영 등이다.

문제는 법정 경위들이 이런 조항을 근거로 방청객이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는 행동까지 임의로 제지한다는 점이다. 최종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은 “법원조직법상 ‘그 밖에 법정의 질서유지에 필요한 명령’의 재량이 주어지는 것은 맞지만, 이는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치는 것이 인정될 정도의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사건 관계인의 자세만으로 재판의 위신이 현저히 훼손되는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이런 행위가 과도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팔짱 제지는 규정에 없고 법원의 권위적 문화와 관련한 문제의식은 이해가 되지만, 아직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을 지낸 조영관 변호사는 “법정의 질서유지는 필요하지만, 방청객의 자세를 지적하는 것은 질서유지라기 보다 판사가 보기 불편한 모습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인 운영”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법원의 권위는 판결 내용과 절차의 진실성을 통해 자연스레 확보되는 것이지 법정 내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손현수 강재구 최민영 전광준 기자 boysoo@hani.co.kr

▶관련기사 : 법정의 존엄과 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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