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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죽은 사람 편들도록 검시관 제도 바꿔 영혼이라도 위로해야죠”‘

등록 2021-12-02 19:25수정 2021-12-02 23:13

‘리영희상’ 허영춘 전 군의문사협 회장
‘아들 허원근’ 30여 년 진상규명 투쟁
특별상은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9회 리영희상 수상자 허영춘 선생.     허경희씨 제공
9회 리영희상 수상자 허영춘 선생. 허경희씨 제공
“37년 전 아들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군부대에 갔더니 아들 주검이 책상 위에 있는데 눈을 부릅뜨고 있어요. 제가 두 눈을 감기며 ‘아들아, 자살이 아닌 것을 안다.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밝혀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 지키느라 혼났습니다.”

리영희재단(이사장 김효순)이 주관하는 리영희상 9회 수상자 허영춘(81) 전 군 의문사협의회 회장이 지난 1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주민은 그는 오는 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특별상 수상자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대리수상 고인의 딸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과 함께 상을 받는다.

국방부는 2017년 5월에 허 전 회장의 아들 고 허원근 일병이 순직했다고 인정했다. “허원근이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2015년 대법원 판단에 근거해 국민권익위가 권고한 순직 인정 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허 일병이 M16 소총 3발을 자신에게 발사해 자살했다고 군이 발표한 지 꼭 33년 만이다.

리영희상 심사위는 허 전 회장이 33년 동안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들인 노력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진실을 추구하는 ‘리영희 정신’”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심사위는 “수상자는 1988년부터 다수 군 의문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운동을 펼쳐 전두환 정권이 강제 징집한 대학생에게 프락치 공작을 강요하고 불응자에게 가혹 행위를 해 죽음에 이르게 한 녹화사업의 실상을 세상에 드러냈으며 이를 계기로 군과 한국 사회 전체의 인권 상황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민주화 과정도 촉진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허 전 회장과 군 의문사 피해자 유가족 활동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 ’(2000~2004)와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2006~2009)가 설치돼 장기간 은폐된 군 의문사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도 선정 사유로 들었다.

허 전 회장은 아들의 주검을 처음 본 순간부터 군 발표를 믿지 않았다고 했다. “군부대에 처음 간 날 한 병사가 저에게 어제 오전 총성은 두 발 들었는데 총상은 세 군데라고 이상하다고 해요. 또 아들이 자살했다는 곳이 아닌 중대 본부에도 핏자국이 보이더군요.”

그는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린 88년부터 본격적으로 진상규명 투쟁에 나서 98~99년 1년 넘게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촉구 여의도 천막 농성을 했다. 의문사를 없애려면 검시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검시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법안 발의(2005년)에도 앞장섰다. 아직껏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돼 행정안전위 계류 중이다.

그의 오랜 고투에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2002년과 2004년 두 차례 조사한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모두 타살로 결론을 내렸다. “중대 간부들이 술을 마신 게 발단이 되어 한 선임하사가 발사한 총탄을 허 일병이 맞았고 간부들은 구호조치 없이 자살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2002년 꾸린 특별조사단 결론은 “의문사위 조사 결과는 조작이며 자살”이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자살과 타살 결론을 내리지 않고 군 헌병대 초기 수사 부실 등을 인정해 3억원 손해배상만을 확정했다.

“남을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아들을 위해 싸웠는데 (리영희)상을 준다니 걱정이 앞섰죠.” 그는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내 아들은 죽었지만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외친 것뿐이라고도 했다. “민주화 유족들이 모인 유가협 활동 때 보니 대부분 여러 사람 앞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분들 가족이고 저 혼자 ‘누군가 내 아들을 죽였다. 진실을 밝히라’고 외치고 있더군요.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약 6500명 군인이 복무 중 죽었어요. 국방부는 의문사의 진실을 솔직히 밝히지 않고 거짓말로 일관했죠.”

그는 아들과 같은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시관들이 독립성을 갖고 죽음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고쳐야죠. 돈 주는 쪽이 아니라 죽은 사람 편을 들도록 해야죠. 그래야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아요. 저는 영혼의 존재를 믿어요. 제대로 검시해 영혼이라도 위로해야 원한이 생기지 않습니다.”

긴 세월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뭔지 묻자 그는 국회 앞 농성 중 유가협 엄마들과 경찰에 끌려갔던 기억을 꺼냈다. “저를 조사하던 경찰이 원근이 이야기를 듣더니 ‘이 상놈의 새끼들, 우리한테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국방부를 욕하더군요. 경찰 유치장에서 힘을 더 얻었어요. 아들 사건에 대해 한 사람이라도 자살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포기했을 겁니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집 앞 바닷가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허영춘 선생과 아내 임복심씨 뒷모습을 손주가 찍었다.                                                     허경희씨 제공
전남 진도군 군내면 집 앞 바닷가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허영춘 선생과 아내 임복심씨 뒷모습을 손주가 찍었다. 허경희씨 제공
심사위는 특별상 수상자 고 김종철 발행인을 두고는 “ 1991년 <녹색평론 >을 창간해 생태적 사상을 전파하고 현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비판했으며 동시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고 실천한 비판적 지식인이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재단은 7일 시상식에 이어 ‘아들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히겠다’(수상자 허영춘·정희상 <시사IN> 기자·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녹색 사상가 김종철’(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한승동 전 <한겨레> 기자)을 주제로 ‘희망메시지 2021 이야기 마당’도 연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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