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강태원복지재단 설립에 기여한 고 강태원 전 태유실업 회장의 손자가 재단 이름을 이용해 수십명으로부터 30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채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1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이유영 판사는 지난달 17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강 전 회장의 둘째 손자 강아무개(40)씨에게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다. 강씨는 “할아버지가 (재단 기부자인) 강태원이고, 아버지(강영일 이사)는 KBS복지재단 이사장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뒤 재단 운영이 어려워 대출을 해 돈을 빌려주면 수수료와 학자금을 주겠다”며 2016∼2020년 사이 32명에게 32억원가량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강씨가 자신의 가족과 재단 이름을 내세워 지인들과, 지인들로부터 소개받은 이들에게 돈을 가로챈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강 전 회장이 재산 270억원을 기부해 2002년 12월에 설립된 재단은 <한국방송>에서 방영하는 나눔 프로그램·캠페인과 협력해 소외 계층과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10월 친구 소개로 강씨를 알게 돼 1억원 피해를 본 허아무개(31)씨는 “(강씨가) KBS재단과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며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피해자 중에는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30대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김아무개(22)씨는 16번에 걸쳐 모아둔 돈과 적금, 대출금 등 1억3천여만원을 건넸지만 그 뒤 강씨가 연락을 끊어 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대학 진학을 위해 모아놨던 돈을 모두 날렸지만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한달에 내야 할 이자만 300만원인데 월급 계좌도 정지당했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고 토로했다. 피해자 중에는 대출금 상환 압박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과 강씨의 가족들은 ‘재단이나 가족과 교류가 없는 강씨가 저지른 일로 사건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강씨는 고 강태원 회장의 손자이나 재단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피해자들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 도움 드릴 방법은 없는 상황이며 추후 재단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법적 조치를 고려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씨의 아버지인 강영일 이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들을 보지 않은 지 오래”라며 “사기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고, 재단은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대응 모임을 만들어 강씨를 상대로 추가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박지영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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