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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재용은 왜 “버핏과 미팅 일정 정해지면 알려달라” 했을까

등록 2021-12-20 15:06수정 2021-12-20 15:19

이재용의 법정을 기록하다⑩
‘워런 버핏에 삼성생명 매각’ 놓고 검찰-변호인단 공방
검찰 “상속세 마련위해 매각 시도…‘이면계약’도 추진”
변호인 “골드만삭스 제안으로 논의…이면약정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그룹 지배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공소장에는 의외의 인물이 나온다. 이른바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바로 그다. 공소장에는 2015년 7월11일 이 부회장이 미국에서 버핏 회장을 만나 삼성생명 매각을 논의했다고 기재돼 있다. 이 부회장이 버크셔 해서웨이에 삼성생명을 넘기려고 하면서 총수 일가에 유리한 쪽으로 ‘이면계약’을 맺으려고 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버핏과의 회동’은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 사건 재판에서 이 부회장의 행동이 직접 드러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다. 검찰은 이 부회장 개인의 그룹 지배력 유지를 위해 제일모직의 주요자산인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하려 하면서도 이처럼 중요한 내용을 투자자에게 공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부회장에게 삼성생명 매각을 컨설팅한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대표는 지난달 3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의 공판에 네 차례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법정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쓴 메일 등이 검찰 쪽 증거로 제시됐고, 검찰과 이 부회장 쪽 변호인단은 이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2012년 “3∼5년 뒤 결정하자”던 삼성생명 매각이 1년7개월 뒤 다시 떠오른 이유는

검찰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을 매각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는 금산분리 문제다. 당시 삼성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 부회장→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금산결합 구조였다. 이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상호 간의 지분소유를 금지한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나는 탓에 삼성의 약점으로 꼽혀왔다. 두 번째는 상속세 문제다. 당시 시점에서 이건희 회장 별세 시 막대한 상속세 부담이 예상됐다는 점에서 총수일가의 지분이 높은 삼성생명 매각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생명 매각은 성사되지 못했다.

검찰은 2014년 5월10일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부회장과 골드만삭스 사이에서 삼성생명 매각 논의가 다시 오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생명 매각은 2012년에도 논의된 바 있다. 2012년 10월, 이 부회장은 크리스 콜 당시 골드만삭스 미국 본사 아이비(IB)본부 회장에게 ‘3~5년 안에 삼성생명 매각을 결정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콜 회장이 이 부회장과 만난 뒤 증인 정형진 대표에게 공유한 메일을 보면, “이재용 부회장이 ‘금융업과 제조업 어디에 집중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 급히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부회장에게 ‘하지만 향후 몇 년 안에 상속세가 선택을 강제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 부회장도 동의했다. 그는 ‘3년 내지 5년(안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약 1년7개월이 지난 뒤 이건희 회장이 와병하자, 공교롭게도 삼성생명 매각 문제는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16일 콜 회장과 만나 삼성생명 매각 문제를 놓고 재차 논의한다. 그즈음 콜 회장과 정 대표가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보면, 정 대표는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쪽 실무자인 피고인 이왕익 당시 전무(미전실 전략1팀 자금파트)와의 대화 내용을 복기하며 “이왕익 전무가 ‘삼성생명을 매각하라’는 이 부회장의 요청사항을 잘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무는 복잡한 회사 분할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단순 매각 방안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했다”며 “그룹은 ‘다른 계열사는 매각해도 되지만 삼성화재는 (총수일가가) 계속 보유하길 원한다. 삼성생명 인수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향후 7~10년간 제3자에게 팔지 않고 보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 메일을 받은 콜 회장은 “삼성생명 인수자에게 ‘7~10년간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말라’고 어떻게 요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난감한 기색을 표한다. 검찰이 이에 대해 묻자, 정 대표는 ‘답하기 곤란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피고인 이왕익은 삼성생명 인수자가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길 요구했나요?” (검사)
“삼성전자 지분을 빼고 (삼성생명을) 팔 거냐, 아니면 넣고 팔 거냐가 이 M&A를 잘 성사시키는 데 중요한 요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논의가 오갔고, 삼성전자 지분을 포함하면 아무래도 (덩치가 크기 때문에) 삼성생명을 팔기가 쉽지 않고, 삼성전자 지분을 빼면 파는 게 좀 용이하다, 이런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증인 정형진)

“피고인 이왕익이 ‘삼성전자 지분을 포함해 삼성생명을 팔고, 대신 삼성전자 지분을 계속 보유하는 것으로 해달라’고 조건을 내세웠냐는 것을 묻는 겁니다.” (검사)
“삼성이 말한 거라 제가 특별히 말하기가 그렇습니다.” (증인)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검찰 “삼성이 워런 버핏에게 ‘이면약정’ 제안”

2014년 6월, 골드만삭스는 이 부회장에게 버크셔 해서웨이를 삼성생명 잠재적 인수자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이 사실을 반긴 이 부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 쪽과의 통화일정을 골드만삭스에 직접 문의하는 한편, 2015년 6월4일에도 골드만삭스와 버핏 회장과의 미팅 날짜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존 와인버그(당시 골드만삭스 부회장)와 버핏 회장의 미팅 일정이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하는 등 중요하게 챙기는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2015년 6월4일은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지분 7.12% 보유 사실을 공시하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날이다.

검찰은 이후 이 부회장 등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버핏 회장에게 △삼성생명을 사업회사(생명보험사업 영위, 삼성전자 지분 보유)와 지주회사(기타 금융 계열사 지분 보유)로 인적분할하고 △버크셔 해서웨이가 사업회사 지분을 인수하되 △삼성생명 사업회사 보유 삼성전자 지분을 7~10년 보유하며 삼성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이면약정을 맺고 △거래는 워런 버핏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공표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재판에서 여러 이메일을 제시하며 이 부회장 등이 삼성생명 매각과 관련해 이면계약을 제시했다는 취지의 신문을 이어갔다. 피고인 김종중 사장(당시 미전실 전략1팀장)은 버핏 회장에게 매각 의사를 타진 중이던 골드만삭스에 ’버핏 회장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를 괜찮다고 한 건지 분명히 해야 한다. 삼성생명을 분할해 지주사와 사업사를 설립할 때까지 버핏 회장이 기다려 줄 수 있는지, 버핏 회장이 지주사 설립 후 계약을 철회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고 한다. 2015년 7월 콜 회장이 버핏 회장과 골드만삭스의 미팅 내용을 정리해 이 부회장에게 보낸 메일에는 “(버핏 회장은) 선밸리에서 1:1 미팅을 원한다. 이 거래가 진행된다면 젠틀맨(버핏 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먼저 거래를 제안했다’고 표현되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왔다. 그러나 삼성생명 매각은 성사되지 못했다.

“삼성생명 매각 제안은 삼성이 먼저 한 게 맞지요? 그런데도 ‘향후 거래 공표 시 워런 버핏이 먼저 제안했다’고 하고, 워런 버핏은 이에 대해 대답을 했는데 그 경위가 무엇인가요?” (검사)
“경위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증인)

“골드만삭스는 피고인 이재용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이런 걸 제의하나요?” (검사)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서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증인)

“주요 거래나 내용에 대해서는 삼성의 요청이나 양해가 있어야 가능하지요? 피고인 이재용이든 삼성이든 말입니다. 골드만삭스가 이런 걸 독자적으로 제안할 수 있나요?” (검사)
“(독자적으로) 제안할 수 없는데, 어느 분이 (제안을) 승인하고 했는지 내부 과정은 모릅니다.” (증인)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상견례 했다고 청첩장 돌리나”

이 부회장 쪽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생명 매각 논의는 골드만삭스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 부회장이 상속세 마련 등을 위해 삼성생명을 매각하려 한 게 아니라, 골드만삭스의 적극적인 제안에 따라 매각을 검토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골드만삭스가 제안했던 다른 매각 아이디어가 성사되지 못하자 보험 전문가인 콜 회장이 나서 삼성생명 매각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법정에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골드만삭스는 2010년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을 제안했으나, 잘되지 않자 2012년 이 부회장에게 삼성생명 매각을 제안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이에 대해 “(수임 활동) 연장선에서 (삼성생명 매각안을) 마케팅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2012년 ‘3~5년 후 결정하겠다’고 한 삼성생명 매각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 와병 직후 논의를 재개한 점, 이왕익 전무가 “이 부회장의 요청사항을 검토해달라”며 문의한 내용 등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반박했다. 이 부회장과 콜 회장이 만나 삼성생명 매각을 논의했다는 2014년 5월16일 미팅은 애초 예정된 광고사업 관련 미팅이었는데 삼성생명 매각 얘기가 함께 오갔던 것이고, 이왕익 전무의 문의 내용은 실무자 차원에서 확인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증인이 2014년 5월14일 보낸 이메일입니다. 이 이메일 내용 보면 골드만삭스는 예정된 미팅 광고 논의를 위해서 회의 자료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인)
“맞습니다.” (증인)

“2014년 5월16일 회의에 삼성생명 매각 얘기가 나왔다면 상황상 누가 얘기를 꺼냈을 것 같습니까?” (변호인)
“크리스가 많이 제안하는 편입니다.” (증인)

“일부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자 피고인 이재용이 막대한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미팅에서 골드만삭스에 ‘삼성생명 지분 매각 계획을 시급히 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거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변호인)
“(관련해서) 액션 있었던 건 아닌 거로 기억합니다. 삼성카드 매각도 수임했지만, 보통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많은 분이 투입되고 회의도 하고 수임 계약서도 논의하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액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증인)

“증인은 삼성생명 매각 얘기 나왔다면 크리스 콜이 꺼냈을 수도 있겠다고 했는데, 크리스 콜이 얘기를 꺼냈고 피고인 이재용이 ‘어떻게 팔 수 있겠는지’ 물었기 때문에 피고인 이왕익과 증인 사이에 이런 이메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변호인)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증인)
또한 이 부회장 쪽은 버핏 회장에게 삼성생명 매수 제안을 할 당시 ‘삼성전자 지분은 총수일가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행사해달라’는 취지의 요구는 했지만 ‘7~10년 보유’ 같은 이면약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버핏 회장에게 건너간 제안서 최종본을 제시하며 “삼성생명 매수인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면서 대주주와 같은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하길 바란다”는 내용만 있을 뿐 삼성전자 주식을 특정 기간 보유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우호적인 M&A에서 우호적 의결권 행사에 관한 제안은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물었고, 증인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김종중 사장이 ‘버핏 회장이 일정 기간 삼성생명의 전자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 요청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삼성생명을 매각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각 교섭에 나서기 전 ‘생명을 인적분할하고 사업사가 전자지분을 보유한 경우’에 어떻게 될지 등 전제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검찰의 핵심 주장인 ‘삼성생명 매각이 가시화됐음에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생명 지분이 주요자산인 제일모직의 주주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놓고서도 ‘2015년 7월 버핏 회장과의 1대1 회동을 앞두고 가격조건도 제시되지 않는 등 구체적인 협상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버핏 회장 미팅에서) 서로 알아가는 대화가 이뤄진 것 외에는 달리 이뤄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증인이 보기엔 어떤가요?” (변호인)
“M&A 하다 보면 자산에 관심이 있더라도 처음에 만나서 서로 안 맞으면 성사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일단 처음 만나는 자리는 상견례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증인)

“위 시점 이후로 삼성생명 매각과 관련해 골드만삭스가 한 게 있나요? 가격 등 구체적인 매각 조건이 논의된 적이 있나요?” (변호인)
“없습니다.” (증인)

“그 정도에서 끝나면 없었던 일로 보는 게 맞지 않나요?” (변호인)
“전체를 100으로 보면 1, 2단계도 안 나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애당초부터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증인)

“상견례 정도 하고 끝난 내용을 시장에 알리게 되면 시장에 혼선을 주는 것 아닌가요?” (변호인)
“그렇습니다.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견례 했는데 청첩장 돌리는 꼴이라 생각됩니다. 발표는 보통 계약 협상 다 하고 이사회 결의할 때쯤 합니다.” (증인)
골드만삭스는 삼성생명 매각 외에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엘리엇 대응방안 등을 컨설팅했고, 검찰과 변호인단은 재판에서 이를 두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재판부는 전직 골드만삭스 실무진을 소환해 증인신문을 벌이고 있다. 새해에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은 타당하다’는 보고서를 만들어낸 안진회계법인 회계사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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