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작업 도중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3주기 추모제가 충남 태안군 원북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려,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아들의 추모 조형물을 끌어안고 있다. 태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금도 (운전원 단독근무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8년 12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이하 김용균)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하청’ 한국발전기술의 21일 결심공판에서 김경재 당시 한국서부발전 기술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2인1조 미준수’는 김용균씨의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것인데, ‘문제가 없다’는 그의 발언에 재판정 뒤 방청석에서 탄식과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재판을 방청하던 김용균의 동료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 간사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는 21일 업무상과실치사·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법인과 임직원 9명, 하청 한국발전기술 법인과 임직원 6명에 대한 결심공판을 열었다. 한국발전기술은 발전기에 필요한 석탄 상하탄 설비 운전·점검 업무를 한국서부발전에게 위탁 받은 업체로, 김용균은 이 업체 소속 운전원으로 일했다. 김용균은 컨베이어벨트 내부를 점검하려고 점검구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협착돼 숨졌다.
앞서 열린 공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시 서부발전 임직원들은 “작업환경은 안전했다” “김용균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서부발전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발전설비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하청업체 안전관리 업무를 맡았던 김 당시 본부장은 사고가 발생한 연료운전 작업에 대해 “안전을 고려해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점검구) 안에까지 들어가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나니 저도 답답하다”며 “어떻게 안에까지 들어가서 협착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선 재판에서 김씨의 동료들이 “낙탄량이 워낙 많고 아이들러와 점검구 위치가 달라 몸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는데도 여전히 ‘원인을 모르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청업체 대표이사와 현장소장도 김씨를 비롯한 작업자들이 현장 행위가 작업자 개인의 ‘과욕’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백남호 당시 한국발전기술 사장은 “(작업자들에게) ‘부모가 낳아준 몸을 멀쩡하게 가져가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니 회사에 과히 충성하지 마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말했고 이근천 당시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도 “평소 (작업자들에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며 “사람이 실수를 해도 인명피해까지 가지 않게끔 설비를 보완하고 우리 직원들도 과욕을 가지고 설비점검에 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신아무개 당시 차장은 “사고가 난 컨베이어 벨트가 설계 의도와 달리 낙탄(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는 석탄)이 많이 발생해 신체를 집어넣게 된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운전원을 2인1조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서부발전에 증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2인1조 근무) 필요성은 느꼈지만 요청한다 해서 해결되리라 판단하지 않았다”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2인1조가 이행됐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청이 용역대금을 늘려주지 않는 이상 2인1조 근무가 불가능했다는 소리다.
김용균이 숨진 이후 “지금까지 석탄설비 작업환경에 대해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던 김병숙 당시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는 이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핵가족시대에 인명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을) 늘 강조해 왔다”면서도 ‘안전 관련 업무는 하급자에게 위임해 몰랐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는 발전 설비 안전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묻는 검사의 질문에 “발전분야에서 일한 적이 없어서 설비 이해도가 없었다”며 “현장에 있는 분들이 전문가들이라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이사는 발전소에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은 데 대해서도 “특별한 보고가 없어 몰랐다”거나 “취임 초기라 숙지가 안 됐다”고 답했다.
검찰은 “법정에서 봤듯이 피고인들이 반성 내지 책임 이런 부분에 대해 전혀 인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부분 감안해서 상응하는 처벌 내려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구형 의견을 밝히며 김 당시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에 징역 2년을, 백남호 당시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에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이날 유족으로 재판정에 선 김미숙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회사가 사고 직후부터 재판까지 일관되게 용균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태도를 보이고 기회만 있으면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다. 이 재판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를 두 번 죽이고 모욕하는 과정이 되고 있어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숙 대표가 피해자를 대신해 진술한 20분 간 재판정은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선고공판은 2월10일 오후 3시께 열린다.
서산/신다은 기자, 박태우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