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라 어두워서 안 보였다. 치고도 사람이 아닌 줄 알고 갔다.”
지난 19일 오전 6시50분 서울 관악구에서 80대 남성을 치고 달아났다가 붙잡힌 70대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이런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시시티브이 조사를 통해 21일 저녁 택시기사를 체포한 관악경찰서 교통과 관계자는 22일 “고령 운전자들의 경우 젊은 사람에 비해 인지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경찰서에도 70대 이상 운전자 교통사고가 많이 접수된다”고 했다. 지난달에도 서울 서초구 주택가 골목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택시가 70대 보행자를 덮쳐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도로교통공단 통계를 보면, 국내 65살 이상 운전자는 2016년 249만2776명에서 지난해 386만2632명으로 5년 만에 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도 2만4429건에서 3만1072건으로 27% 증가했다. 특히 운전이 직업인 택시기사로 한정하면 10명 중 4명이 고령 운전자에 해당한다. 교통안전공단이 집계한 자료에서는 지난달 말 기준 전국 택시운전자 24만874명 가운데 9만5537명(39.8%)이 65살 이상이다. 개인택시 운전자 고령화 비율은 45.6%, 법인택시는 25.9%였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꾸준히 지적되자
정부는 2019년부터 65살 이상 고령자에게는 5년마다 적성검사를, 75살 이상인 경우엔 3년마다 적성검사와 함께 교통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신체능력에 따라 면허 유지 또는 취소를 판단한다. 이와 함께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진반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해 참여율은 2%에 불과했다.
이에 경찰청은 2025년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3년간 브이아르(VR·가상현실) 기반 운전적합성평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연구에 착수한다. 노화나 치매뿐 아니라
시력·신체반응 속도에서 야간운전·고속주행이 어려운 이들에게 조건부 면허를 부여하기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운전적성평가를 거치면 면허를 유지하거나 아예 취소하는 두가지 방안만 있다. 야간운전이나 고속도로 주행 등 다양한 상황에서 운전을 부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기준 및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국회에는 고령 운전자 종합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교통안전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국가교통안전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 확보를 위한 도로환경 개선, 교통안전시설 정비·확충 등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장예지 고병찬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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