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빛과 어둠 공존하는 성탄절 명동 풍경 LED 화려한 신세계백화점 앞 ‘인증샷’ 행렬 공실률 47.2% 명동 거리는 어둡고 스산
22일 저녁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왼쪽)과 근처 명동 거리(오른쪽)의 풍경. 이우연 기자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22일 저녁 7시께 서울 중구 명동 거리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을 연상케 했다. 화려한 빛 장식으로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껏 낸 백화점 앞은 인파로 가득했지만 건너편 명동거리는 상가 절반가량이 빈 상태로 어둡고 스산한 풍경이다.코로나19 여파로 2년 가까이 인파가 끊겼던 명동에 사람이 다시 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첫해인 지난해에 크리스마스 앞뒤로는 썰렁했지만, 올해는 명동성당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이 사진 촬영하기 좋은 장소로 입소문을 타면서다. 이날 저녁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해 인증사진 명소로 꼽힌 장소들은 젊은 연인과 친구, 가족 단위 인파로 가득했다.
22일 저녁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 이우연 기자
건물 외벽에 엘이디(LED) 조명을 이용해 영상을 투사(미디어 파사드 기법)하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이 가장 붐볐다. 백화점 건너편 서울중앙우체국 앞에 모인 200여명의 시민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치켜들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형형 색깔의 조명이 구현하는 서커스 영상에 시민들은 눈을 떼지 않았다. 우체국 앞에는 크리스마스 장난감을 파는 노점상이 좌판을 깔았고, 혹시나 있을 불상사에 대비해 경찰들도 순찰차에 탄 채 대기했다. 아들과 함께 온 김희진(38)씨는 “코로나로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예정이지만 분위기라도 느끼고 싶어서 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영상이 훨씬 화려하고 예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명동성당 계단 옆에 설치된 엘이디 장미 정원에도 ‘인증샷’을 찍는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됐다.
22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우연 기자
빛의 향연이 펼쳐졌던 중앙우체국에서 300m가량 떨어진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초입은 암흑이 펼쳐졌다. 해외 관광객을 겨냥한 화장품과 옷가게가 즐비했던 명동거리(명동역에서 유네스코길까지 뻗어있는 대로)에 위치한 상가 1층은 절반이 공실이었다. 대로 양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은 정전이 의심될 정도로 어두웠다. 길거리 간식을 파는 노점상과 나무에 장식된 조명이 거리의 온기를 그나마 유지시키고 있었다. 상업용 부동산 플랫폼인 알스퀘어가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 3분기 명동의 공실률은 47.2%로 서울 내 주요 상권 중 가장 높았다. 2020년 3분기(9.8%) 평균의 5배 수준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으며 기울기 시작한 명동 상권에 코로나19가 직격탄을 날렸다. 거리를 찾은 시민들은 “여기 큰 옷가게 있었잖아, 언제 폐업했대”, “귀신 나올 거 같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인적이 끊긴 골목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있던 여성복 가게의 종업원 함아무개(47)씨는 “가게 주인이 건물주거나 내국인을 대상으로 입소문이 난 일부 식당을 제외하고는 명동거리 가게들이 모두 폐업했다고 보면 된다”며 “권리금을 안 받는 건 물론이고 월세를 10분의 1로 받겠다고 해도 몇달 째 상가 임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인증사진을 찍으러 온 시민들이 명동거리를 찾아도 반겨줄 상인들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인파가 몰려도 명동 거리를 여전히 지키는 상인들의 매출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시민들은 사진만 찍고 다른 상권으로 이동해 식사나 쇼핑을 한다고 한다. 함씨는 “백화점이나 성당 앞에는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쪽 거리는 가게가 다 문을 닫다 보니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14년째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는 ㄱ(45)씨는 “최근에는 근처 백화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조금 매출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며 “지난해 명동 상권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지만 건물주들이 높은 임대료를 한동안 그대로 유지했다. 그때 버티지 못하고 많은 가게가 폐업했다”고 말했다.
22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우연 기자
22일 저녁 ‘임대’ 현수막이 걸린 서울 중구 명동의 빈 상가 앞을 한 행인이 지나치고 있다. 이우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