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3일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의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결정을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꾸려면 원칙적으로 고용주의 동의를 받도록 한 고용허가제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사용자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일터 이동 제한 등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헌재는 23일 이주노동자 ㄱ씨 등 5명이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의 1항 등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이 법은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와 근로계약 만료 후 갱신 거절, 사업장 휴·폐업 또는 고용허가가 취소된 경우,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이 있을 때만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대한 공포, 불편한 근무환경 등으로 일터를 바꾸고 싶으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노동자의 책임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사용자가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한 경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은 이주노동자들이 폭언이나 폭행 등 피해를 보더라도 고용주 동의 없이는 일터를 옮기지 못하게 해, 사실상 ‘강제노동’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헌법소원을 낸 ㄱ씨 등 5명은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 받아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ㄴ씨는 사용자가 무면허로 지게차를 운전하라고 요구해 다른 직무를 요청하니 출신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을 받았다. ㄷ씨는 근로기준법에 금지된 위약금 명목으로 사용자가 300만원을 갈취하려 들었고, ㄹ씨는 유해한 유기용제를 다루다 산재를 당했는데도 보호장구 지급 요구를 거절당했으며, ㅁ씨는 중대 산재 사고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같은 회사에서 계속 일했다. 하지만 이들은 외국인고용법과 고시에 나열된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ㄱ씨 등은 ‘고용허가제’는 헌법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를 위반한다며 지난해 3월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헌재는 “이주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취업활동 기간 내에서는 장기 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어 “외국인고용법이 채택한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의 규율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다. 이주노동자가 입국할 때 완화된 통제를 받는 것은 체류와 출국에서 강화된 규제로 만회할 필요성을 가진다. 이주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할 때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 신청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내고 “사업장 변경 사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감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고용허가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협할 수 있다. 외국인고용법은 이주노동자의 장기 근무를 유도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직장선택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도 사업장 변경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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