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여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26일 오전 서울 중구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으러 온 한 시민이 아이를 외투로 안아준 채 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15.5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몰아친 26일에도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들은 많았다. 이들은 맹추위보다 무서운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하루 생계를 꾸리기 위해 두꺼운 옷으로 온몸을 감싼 채 동장군과 맞섰다.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동작구 한 선별진료소는 롱패딩과 털모자, 장갑으로 중무장한 채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도 북적였다. 영하 10도가 훌쩍 넘는 강추위에 떨며 100여명가량이 밖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부모 품에 안겨 검사를 받고 나오는 아이들은 검사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종종 울음을 터트렸다. 유치원에 확진자가 나와 이달에만 두 번째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권영우(5)군의 어머니 이미영(47)씨는 “너무 추워 아이 내복을 두겹 입혔다. 유치원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30분께 선별진료소 직원들이 길게 늘어선 대기자들에게 “대기자가 너무 많아 오후 1시께가 넘어야 검사가 가능하다. 번호표를 드릴 테니 이따 오시라”고 안내하자 중학생 4명은 “아싸”라고 환호성을 외쳤다. 이들을 데리고 온 정현미(45)씨는 “반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전체가 격리됐다가 오늘 격리해제 검사를 하러 중학교 3학년 아들과 그 친구들을 함께 데려왔다. 30분째 기다리느라 너무 추웠는데 점심 먹고 다시 나와야겠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한 선별진료소에 검사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고병찬 기자
생계 걱정에 쉬지 못하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추워도 우리 같은 사람은 죽으나 사나 나와야 돼.” 1995년부터 노량진 거리에서 노점을 운영해왔다는 ㄱ(78)씨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나와 옥수수와 음료수를 판매한다. 50살이 넘은 아들은 몸이 아파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그가 한 달 100만원 남짓 버는 돈이 수입의 전부다. 반지하 월세방은 얼마 전 월세를 10만원 인상했다. 그는 “코로나로 거리에 사람이 줄어 너무 힘들다”며 “30일에 내는 월세 40만원이 걱정돼 장사를 안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군고구마를 파는 김아무개(55)씨도 “너무 추워도 이런날엔 대목이니 나올 수밖에 없다. 밤 10시30분까지 있다가 들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이들도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옛 계성여고터에 대형 천막으로 차린 천주교 서울대교구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감을 1시간 남겨둔 오후 3시께 647명이 식사를 마쳤다. 매주 이곳을 찾는다는 김용규(74)씨는 눈만 밖에 내놓은 채 옷으로 온몸을 꽁꽁 감쌌다. 그는 “3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면서 형편도 좋지 못하고, 밥을 잘하지도 못하다 보니 끼니를 잘 못 챙기게 됐다”며 “보통 무료급식소에서 하루 한 끼를 먹고 나머지는 물을 마시면서 버티다 도저히 안 될 땐 컵라면을 먹는다”고 말했다.
오후 12시 18분께 노량진 일대에서 ㄱ(78)씨가 손님이 없는 노점을 지키고 있다. ㄱ씨 옆엔 작은 온풍기 하나만 놓여 있다. 고병찬 기자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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