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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0년 전 얻어먹은 뜨끈한 홍합 한 그릇, 이제야 갚습니다”

등록 2021-12-28 11:40수정 2021-12-29 02:35

지난달 서울 신촌지구대에 편지와 2000달러 전달

ㄱ씨가 신촌지구대에 보낸 편지. 신촌지구대 제공
ㄱ씨가 신촌지구대에 보낸 편지. 신촌지구대 제공

1970년대 중반, ㄱ(71)씨는 강원도에서 서울 서대문구 신촌으로 온 학생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학비를 내기도 빠듯하다 보니 늘 배가 고팠다. ㄱ씨에게 겨울은 유독 추웠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밤, 신촌시장 뒷골목 리어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합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ㄱ씨의 눈에 들어왔다.

“저는 너무도 허기져서 염치도 없이 그것 한 그릇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돈은 내일 갖다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리어카 아주머니들 중 한 분이 선뜻 뜨끈한 홍합 한 그릇을 서슴없이 퍼주었습니다.” 하지만 ㄱ씨는 그 돈을 갚지 못했다. “그 아주머니에게 너무도 고마웠고 잘 먹기는 했습니다만 그다음 날이라고 제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28일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중순 신촌지구대에 한 시민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의 부탁”이라며 노란 봉투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봉투 안에는 ㄱ씨의 사연이 담긴 편지와 2000달러(한화 약 230만원) 수표가 들어있었다. ㄱ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이민 길에 올라 지난 50년간 친절하셨던 아주머니께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 이제 제 삶을 돌아보고 청산해가면서 너무 늦었지만 어떻게든 그 아주머니의 선행에 보답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돈을 보낸 이유를 밝혔다.

ㄱ씨는 “(이 돈으로)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며 “너무 작은 액수라 부끄럽습니다만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속죄의 심정으로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신촌지구대는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마봄협의체)에 전달해 어려운 가정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쓰도록 하겠다”며 이날 전달식을 진행했다.

황영식 신촌지구대장은 “ㄱ씨는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 원하지 않았으나 선행에 감동해 그의 사연을 언론에 알릴 수 있도록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ㄱ씨가 신촌지구대에 보낸 편지.신촌지구대 제공
ㄱ씨가 신촌지구대에 보낸 편지.신촌지구대 제공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8일 ㄱ씨가 보내온 돈을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전달했다. 신촌지구대 제공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8일 ㄱ씨가 보내온 돈을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전달했다. 신촌지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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