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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개팅도, 이력서도 MBTI…친구사귈 때 “MBTI 속이게 돼요”

등록 2021-12-29 14:22수정 2021-12-30 02:34

2030세대 일상만남, 취업 등 다방면 MBTI 적용
MBTI 맹신 풍조엔 비대면사회·사회경제적 불안 작용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티(T)는 공감 능력이 없고, 피(P)는 게으르대요. 그래서 제 엠비티아이(MBTI)를 속여서 말했어요.”

30대 직장인 ㄱ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지인의 동생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려 자신의 엠비티아이(MBTI)를 속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MBTI가 2030세대의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면서 재미로 즐기는 것을 넘어 사람을 판단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MBTI에 몰입할수록 타인에게 나쁜 인상을 주거나 놀림거리가 될까 봐,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이다.

MBTI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 유형론에 근거해 ‘E(외향형)-I(내향형)’, ‘S(감각형)-N(직관형)’, ‘T(사고형)-F(감정형)’, ‘J(판단형)-P(인식형)’의 4가지 차원으로 사람의 성격을 유형화한다. 이를 조합하면 ISFJ, ENFP 등 총 16가지 유형의 성격이 도출되는데, 이는 최근 몇년 사이 2030세대들 중심으로 타인의 성향이나 성격을 가늠할 때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고 있다. 첫만남, 소개팅, 회사 워크숍 등에서 서로의 MBTI를 물어보고 ‘소통의 열쇠’로 삼는 모양새다.

12월 초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의 타임라인에는 자신의 스토리에 ‘Guess my MBTI(내 MBTI를 추측해봐)’라는 게시물을 공유하고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MBTI를 맞추도록 하는 게 유행이었다. 참여자는 15만명을 훌쩍 넘었다. 우아무개(25)씨는 “나를 다양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MBTI 유형별 궁합’, ‘MBTI 유형별 회사생활’ 같은 게시물이 꾸준히 올라온다.

그러나 ‘MBTI광’들도 이곳저곳에 MBTI를 갖다 대고 몰입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고 털어놓는다. 문아무개(22)씨는 최근 첫 만남에서 MBTI를 물어보는 것을 자제한다. 문씨는 “어느 순간 T유형인 사람을 만나면 내 말에 공감을 못 해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타인에게 편견이나 선입견을 줄까 봐 자신의 MBTI를 속여서 말하는 이들도 생긴다.

채용과정에서 MBTI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10월 한 식품유통회사는 하반기 공채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사례를 들어 소개하시오’란 문항을 넣었다. 취업준비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채용에 지원했던 최아무개(25)씨는 “회사에서 선호하는 MBTI가 따로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워 절박한 취업준비생으로서 MBTI를 속여야 하나란 유혹도 있었다”며 “영업직군 지원자라면 실제 성격은 I(내향형)더라도 E(외향형)를 써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직 플랫폼에 올라온 채용 공고 갈무리. 구직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MBTI 를언급했다. 잡코리아 갈무리
구직 플랫폼에 올라온 채용 공고 갈무리. 구직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MBTI 를언급했다. 잡코리아 갈무리

MBTI에 과몰입하는 배경엔 비대면 사회가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렌드모니터2022>는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2%가 MBTI를 신뢰하고, 80.6%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답했다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지금, 심리검사를 통한 정체성의 확인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데 비대면 사회에서는 이것이 어려워졌다”며 “MBTI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쉽게 공유되면서 타인과 대면하지 않고도 자기 이해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안도 MBTI가 유행하는 요인 중 하나다. 어려운 시기 사주나, 점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심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고, 불안하면 기댈 곳을 찾게 된다”며 “코로나가 2년째 지속하며 젊은이들이 사주나 점보단 조금이라도 과학적으로 보이는 MBTI에 의존해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MBTI의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다며 과도하게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임명호 교수는 “의대나 간호대에서 사용될 만큼 신뢰도가 인정되는 다면적인성검사(MNPI)도 면접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요소로 사용되진 않는다”며 “MBTI가 접근과 해석이 용이하지만, 맹목적으로 신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동귀 교수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걸 즐기는 엠제트세대에게 MBTI는 좋은 놀잇거리”라면서도 “흥밋거리 그 이상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초 인스타그램에선 ‘Guess my MBTI’라는 게시물이 유행했다. 이용자들은 서로의 MBTI를 맞추는 놀이를 진행했다. 사진은 한 인스타그램 계정 스토리를 갈무리했다.
지난 12월 초 인스타그램에선 ‘Guess my MBTI’라는 게시물이 유행했다. 이용자들은 서로의 MBTI를 맞추는 놀이를 진행했다. 사진은 한 인스타그램 계정 스토리를 갈무리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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