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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가 사회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등록 2022-01-01 10:30수정 2022-01-08 16:37

[한겨레S] 릴레이 연재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11월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11월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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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정한 피부색을 가졌는지만으로 다른 어떤 이유 없이 극단의 차별을 받았던 경험 때문에 피부 안까지 떨림을 느꼈던 적이 있다.

1997년 어학연수로 영국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몇개월 뒤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주말 내내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주중에 생활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일하던 어느 날, 이 식당을 운영하는 영국인 사장이 나타났다. 평상시에는 이탈리아 매니저와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이전에는 사장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사장은 매니저에게 따지듯이 내가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자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매니저에게 나를 해고하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매니저가 “이유 없이 저 사람을 해고하면 나도 나가겠다”고 말하자, 사장은 “오케이”라는 말을 가볍게 던지며 유유하게 가게를 떠났다. 우선 그 찰나의 순간, 이탈리아 매니저를 통해 경험했던 것은 이주자의 취약함에 놓였던 내게 보내준 연대였다. 반대로 누군가를 향한 차별에 항의하며 자신의 자리라도 내놓겠다는 매니저를 “오케이”라는 한 단어로 무시하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불통의 권력도 경험했다.

25년 전 영국서 당한 ‘한국인 차별’
지금 대선 후보들 태도에서 오버랩
차별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벌어져
‘소속될 권리’ 보장할 법 제정돼야

차별에 대한 저항을 대하는 태도

20년 넘은 이 기억은 지난 12월 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힘쓰는 활동가들과 마주친 장면과 겹친다. 이들 활동가는 이 후보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발언에 대해 항의했다.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저의 존재는 사회적 합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저와 이 땅의 성소수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사과해주십시오.” 활동가들의 외침에 이 후보는 여유롭게 웃으며 “다 했죠”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차별에 대한 항의는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두고 떠날 수 있는 것이 권력의 작동 방식이자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 후보가 해야 했던 대답은 “차별을 혼자 감당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 이행을 위한 이후의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는 것이어야 했다. 보름여 뒤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며 저소득·저학력 계층을 구분지어 비하했다.

“차별하자는 정치는 가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우리가 사회다”라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구호는 2021년에 가장 강렬하게 울림을 주었던 말이다. ‘우리가 사회다’라는 선언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면서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기만적인 정치에 대한 대항적인 의미를 넘는다. 내가 경험하는 차별과 당신이 경험하는 차별이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되어 있음을 전한다. 또한 차별이 분리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우리의 삶을 더 고립화하고 무력화한다고 제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고 왜 더 연결되어야 하는가?

지금 정부를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2017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다. 하지만 대선 3개월 전 보수 기독교계와 만난 자리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선 긋기’를 했다. 앞서 한 토론회에선 성소수자 인권을 묻는 질문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저의 평등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저항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100대 국정과제 안에 차별금지법이 포함되지 않았고, 성소수자 이슈도 없었다.

우리는 ‘나중에’로 응답했던 5년의 결과가 현재 어떤 삶을 강제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았다. 국가가 성평등의 이슈에서 여성과 성소수자의 이슈를 분리해 어떤 여성은 보호하고, 여성으로서의 자격을 따지는 시간 동안 우리는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지는 성소수자들의 삶과 죽음을 목도하게 되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 사회에서 누구도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분리되어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사안만이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삶에 대한 복합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사회에 속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 

사회적 신분의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들은 단순히 법의 문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경험되는 차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를 반영한다. 즉, 여성은 성별로, 이주자는 인종으로,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으로 분리되어서 차별이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삶에서 ‘이주여성’이라는, 혹은 ‘레즈비언 이주여성’이라는 차별들이 분리될 수 없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면,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영국에서 당한 차별은 인종차별만이 아니라 ‘동양인 여성’이라는 위치가 복합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연결되기에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분리되지 않고 삶에서 경험된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이 비혼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결혼 중심의 생애 모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혼 여성은 일터에서 성차별을 경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고 비혼 동거를 하는 경우에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회사에서 동거인이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생활동반자로서의 권리가 부재하면서 차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복합차별을 경험하는 개인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법도 아니고, 성소수자와 무관한 법 또한 아니며, 동질화된 삶을 살아왔던 시대를 넘어서 삶의 다양성을 공동체의 토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차별은 당사자인 나의 이슈만이 아니라 차별에 어떻게 응답할지를 함께 모색하고, 함께 짐을 나누는 사회를 질문하는 것이다 . 사람을 함께 살리는 사회, 삶의 불안정성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 공적인 영역의 확보는 사회―없음의 상태를 느끼는 많은 시민들이 ‘소속될 권리’를 갖는 출발이 될 것이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의 시작이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응답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김순남 | 여성학을 전공했고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연구자와 대학강사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오류동 퀴어세미나에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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