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서울 성북구청의 주민참여 열린 토론회에서 주민들과 경비원들이 최저임금제 인상에 따른 경비원 고용불안 해소방안 토론회에 앞서 자신들의 주장을 카드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태위기 시대의 복지 비전인 녹색복지국가는 자연과 인간의 호혜적 공존을 지향하기에 생태사회정책의 뚜렷한 전개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생태사회정책이란 인간을 위한 더 나은 복지와 생태적 지속가능성 모두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안전한 기후와 더 나은 복지의 시너지를 꾀하는 정책이다.”
이런 생태사회정책 구상은 아직 추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논의가 미성숙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몇몇 사회정책학자의 관심에 그치고 있다. 개념은 물론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미미하다. 나름의 정책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의미 있는 수준에 이른 적은 거의 없다. 이런 까닭에는 환경과 복지의 연계적 사고 경험이 일천하고, 무엇보다 사회정책에서 생태적 사고 자체가 아직 낯설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생태전환적 사회정책은 여러 정책 영역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종합적 정책 속에서만 제대로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생태사회정책은 겨냥하는 문제의 성격이 그러하듯 환경이나 복지 등 하나의 개별 정책 틀에서는 결코 도출될 수 없다. 보건, 복지, 노동, 환경, 교육 그리고 경제 등 다양한 부문에서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조정하고 설계하고 집행해야 그나마 문제 해결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이는 본질에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상실이란 생태위기가 전방위적인 위험을 지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하나만 보더라도 특정 문제라기보다 지구 전체와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주는 포괄적 조건과 같은 것”(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사회정책이 추상의 수준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대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장벽이 바로 현실의 ‘정책 칸막이 구조’일 것이다. 이 허들을 넘지 않고서는 의미 있는 생태사회정책 대안을 짜는 것은 물론, 집행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정책 칸막이 구조란 우리 사회의 문제나 요인을 부문별로 구획화하는 관행과 관성, 나아가 이해관계의 장(field)을 가리킨다. 사회문제를 사고하거나 대응하는 방식이 환경, 교육, 여성, 노동, 장애, 인권 등의 칸막이로 나뉘어 사고하고 쪼개어 제각기 대응하는 틀이다.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계와 연구자들의 초기 아이디어 단계부터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이뤄지는 관료들의 집행까지 모든 단계에서 칸막이는 존재한다.
수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이뤄지는 정책 연구가 얼마나 분절돼 있는지를 보면 이해가 쉬울지 모른다. 각 영역은 또다시 더 작은 세부 영역으로 쪼개져 있다. 세분된 구획화는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적어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대응에서는 좁은 시야로 인해 낭패를 불러오기에 십상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기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많은 사회적 위험과 사회문제는 여러 중층적 요인이 한데 뒤얽혀 발생한다. 이들 요인은 긴밀하게 얽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문제를 낳는다. 그러니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때는 각 세분화한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삼되, 그것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집행하는 통합적 대응일 때 비로소 크고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명한 명제와 달리 현실에서 작동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은 그야말로 분절과 구획의 칸막이 구조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 칸막이 구조가 특정 조직의 강력한 이해관계를 위해 기능할 때도 적잖다. “어떤 특정 문제 관련 당사자, 학자 등 전문가, 기관, 이해관계자, 심지어 사회운동 조직 등이 모여 하나의 장으로 ‘영역화’해 이해관계자 공동체를 형성할”(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때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 대응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도 이런 구획화와 영역별 이해관계자 조직에 조응해 역시 칸막이로 나뉘어 통합적 대응을 해치는 상황이다. 부처 간의 소통 부재와 대립을 불러오는 부처 이기주의나 한 부처 안에서 국실별 갈등과 대립을 낳는 조직 이기주의 양태가 그것이다. 이런 양태가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정부 조직에서 최소화하지 않으면 통합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나 잘 짜인 청사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 안의 정책 칸막이 문제는 일부 전문가 등이 간헐적으로 지적한 사안이다. 하지만 좀체 이를 극복하는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예컨대 “백약이 무효”라고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풀리지 않는 난제인 ‘저출산 정책’을 보자. 한동안 이 문제 해결은 보건복지부의 영역이었다. 언제부터 ‘관계부처 합동’이란 이름의 정책 형태로 발표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각 부처가 제시한 정책을 하나의 바구니에 묶어 발표하는 ‘따로국밥’식 정책 꾸러미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정책 칸막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전환과 생태위기 등 메가톤급 복합 위험의 시대다. 이들 위험은 우리 사회와 지구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이 대응이 단지 환경부와 산업부, 나아가 기획재정부 등 몇몇 부처만의 영역이겠는가? 생태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나 취약계층을 보호하려면 노동과 복지 등 전방위적 대응이 필요하다. 더욱이 국내를 넘어 국제적 협력과 연대 또한 요구된다.
그렇다면 정책 칸막이 구조를 깨뜨리는 담대한 정책 방향 선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먼저 고민할 대목은 통합적 대응을 위한 정부 조직의 혁신을 포함해 새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거버넌스 체제 혁신에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지역주민 등 사회구성원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제를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역 단위 주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지역참여 민주주의 강화’가 새 거버넌스 구축에 요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를 현실화할 정치가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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