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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인 자각 키워준 ‘큰스승 정경모’ 존경하는 마음에 나섰어요”

등록 2022-01-11 18:59수정 2022-01-12 02:19

【짬】 재일동포 2세 안병호씨

일본 도쿄에서 고 정경모 선생 묘비 모금 운동을 하고 있는 동포 2세 안병호씨. 도쿄/김소연 특파원
일본 도쿄에서 고 정경모 선생 묘비 모금 운동을 하고 있는 동포 2세 안병호씨. 도쿄/김소연 특파원
“정경모 선생님을 오래전부터 존경했어요. 지난해 묘비 모금 운동을 한다는 <한겨레>(2021년 11월23일치) 기사를 인터넷으로 보고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싶어 용기를 냈어요.”

일본에서 ‘마지막 망명객’ 통일운동가 고 정경모(1924~2021) 선생의 묘비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는 재일동포 2세 안병호(77)씨를 지난 6일 도쿄에서 만났다.

지난 연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경모 선생 묘비 건립에 힘을 보태주십시오’라는 글(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90130932896672&id=100056993053564)을 올린 안씨는 “여러 사람이 마음을 모아 묘비를 세우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별세한 정경모 선생은 망명 반세기 만에 유골로 귀국해 4월2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봉안됐다. 지난해 9월엔 문익환 목사·박용길 장로 부부, 유원호·안순심 부부의 묘 바로 옆으로 이장했다. 1989년 3월 방북해 ‘4·2 남북공동선언’을 끌어낸 ‘통일의 씨앗 3인’이 32년 만에 고국 땅에서 만나 나란히 묻힌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정 선생 직계 유족들이 한국에 찾지 못하는 등 여러 사정으로 묘비를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듣고 지난해 11월 말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장영달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와 더불어 ‘묘비 모금 1만원 후원 운동’을 제안했다.(“일본에서 ‘몽양 정신’ 이어온 정경모 선생 ‘묘비’ 함께 세웁니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일본 미에현에서 나고 자란 동포 2세 안씨는 “스무살 무렵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하면서 정 선생을 ‘큰 스승’ 같은 존재로 여겨왔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 넋이 되어서야 돌아갔는데 묘비석 하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청소년 시절 기타에 빠져 스무살에 혼자 도쿄로 올라와 음악 활동을 하던 그의 인생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논란을 계기로 달라졌다. “텔레비전에서 한일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도쿄 집회를 봤어요. 어떤 사람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알고 싶었죠.”

도쿄에서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

모란공원 묘비 건립 모금 운동 펼쳐

“여러 사람 힘 모으면 더 뜻 깊어”

‘4·2공동선언 기념비’ 기금도 함께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집회 계기로

한국청년동맹 활동하며 우리말 배우

고인 펴낸 ‘씨알의 힘’ 보며 배워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한국청년동맹(한청)에서 활동하면서 처음 한국말도 배웠다. “한청에서 재일동포 취직을 알선하는 일을 했어요. 지금도 어려움이 많지만, 그때는 재일조선인의 일본 회사 취업이 아예 불가능했죠. 차별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는 한청에서 5년 일한 뒤 한식도매상과 요식업 등 개인사업을 해왔다. “사업을 하면서도 정 선생께서 발행한 <씨알의 힘>을 계속 읽었어요.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존경하던 정 선생을 직접 찾아가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워낙 큰 어른이라 솔직히 어려웠죠. 만날 때마다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왔습니다.”

<씨알의 힘>은 정 선생이 1979년 도쿄에서 재일동포와 일본인을 대상으로 ‘씨알의 힘’이라는 사숙을 열어 한국의 민주화·통일운동과 역사를 교육하면서 81년부터 87년까지 펴낸 교재용 잡지다. 1991년부터는 <씨알>로 바꿔 13년간 펴냈다. 1986년 국내 운동권에 해적판으로 널리 알려진 <찢겨진 산하>(거름)는 <씨알의 힘>(1983년 6월호)에 실린 정 선생의 글 ‘여운형·김구·장준하 세 선각의 운상경륜문답’을 다듬어 낸 것이다.

“안 선생은 1988년 <한겨레> 창간 때 주주가 되고자 서울까지 건너갔는데, 그때 법적으로 재외 국민은 주식을 살 수 없다고 해서 실망만 안은 채 되돌아온 적도 있어요.”

이날 인터뷰에 동행한 정 선생의 장남 강헌씨 얘기에 안씨는 쑥스러워하면서 묘비 모금 운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로 다들 힘들어서 그런지, 모금 운동이 기대만큼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조금 더 힘을 내보겠어요.”

일본 후원 모금은 3월15일까지 할 예정이다. 계좌번호(みずほ銀行大森支店 店番 196 普通 2054551 安炳鎬/ ゆうちょ銀行 記号 10090 番号 2474411 アン ビョンホ)

자유언론실천재단 관계자는 10일 “지난 연말까지 한 달 남짓 만에 1차 목표액 500만원을 달성했고, 3월말까지 2차 모금을 진행해 ‘4·2선언 기념비’ 기금으로 후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늦봄기념사업회는 오는 4월2일 모란공원 묘역에 ‘4·2선언 기념비’와 함께 정 선생 묘비를 제막할 계획이다. 후원 계좌(농협 301-0240-3680-71 자유언론실천재단)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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