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대상인 여성의 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인·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이석준씨가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있으면 주소는 찾을 수 있다. 하루면 된다.”
11일 서울의 한 흥신소에 누군가의 주소를 찾는다고 문의해보니 ‘하루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흥신소 관계자는 “요즘엔 (이석준) 사건도 있다 보니 주소를 알려주더라도 찾아가는 건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까지 했다. 그가 요구한 비용은 50만원으로, 신변보호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석준(26)씨가 흥신소에 건넨 액수와 같았다.
이씨가 흥신소를 통해 피해 여성의 집 주소를 찾을 수 있는 데는 흥신소에 2만원을 받고 개인정보를 넘겨준 조력자가 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청 계약직 공무원 ㄱ(40)씨다.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결과, ㄱ씨는 과태료 부과를 위한 차적관리정보시스템(차적 조회 시스템)을 이용해 2년간 1101건의 개인정보를 조회해 흥신소에 넘기고 3954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년 동안 권선구청과 수원시청,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토교통부는 모두 ㄱ씨의 정보 조회와 유출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해당 시스템은 다른 전국 지자체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개인정보 유출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다. ㄱ씨를 구속기소한 검찰은 “(권선구청에)차적조회 권한 남용 방지를 위한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날 <한겨레>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점검 의무가 있는 국토부는 ‘지자체 소관’이라고 책임을 돌렸고, 구청의 개인정보처리 현황을 점검하는 수원시청은 “해당 시스템의 점검 권한이 없다”고 항변한다.
수원시청은 전국 지자체가 동일하게 국토부의 차적 조회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지자체는 정보조회 권한만 있을 뿐 점검을 위해 (개별 공무원의) 접속기록을 받아볼 권한은 없어 ㄱ씨와 같은 남용 사례를 걸러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원시청 관계자는 “수원시의 경우, 시가 운영하는 자체 개인정보처리 시스템은 매월 1일 접속기록을 취합해 (조회 남용 등) 문제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러나) 국토부가 운영하는 차적정보관리시스템은 접속기록 점검 권한 자체가 없어 (관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매해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참여하는 ‘공공기관 관리수준 진단’ 차원에서 차적조회 등 국토부가 운영·관리하는 개인정보 시스템에 대한 접속기록 점검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자체도 국토부에 자료를 요청하면 직접 관리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차적조회 등이 포함된 건설기계관리정보 시스템은 전국적으로 통일될 필요가 있어 국토부에서 만든 것은 맞지만 실제 업무는 지자체가 하고 있다”며 “(조회 기록) 점검 방법에 불편함은 있겠지만, 지자체가 국토부에 (자료를) 요청해 직접 점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쪽 주장대로 지자체가 소속 공무원들의 개인정보 열람 기록 등을 받아볼 순 있지만, 점검 권한이 없는 기관에서 제대로된 관리를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시청도 지난해 12월 ㄱ씨가 검찰에 체포된 직후 사태 파악에 나섰지만, 시스템상 ㄱ씨가 조회했던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없어 국토부에 ㄱ씨의 기록정보를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구체적 사유 등을 제시해 달라는 이유로 국토부에서 요청이 반려됐다고 한다.
수원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적조회 등 정부 기관이 관리하는 개인정보조회 시스템에 대해 지자체도 점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보낼 예정이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도 “일단 지자체 요청이 오면 기록을 바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하고, (업무상) 목적 없이 개인정보 조회를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상 조처를 취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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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공무원이 2만원에 팔아 넘긴 주소…‘신변보호 가족 살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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