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17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제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소송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위성정당이 참여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1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후보자를 등록한 것이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당리당략에 따라 민의를 왜곡한 거대 양당의 꼼수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걸러내지 못한 것에 잘못은 없다는 취지다. 이 판결을 계기로 현직 대법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는 ‘위헌적 관행’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선거무효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4월 21대 총선 때 각각 비례용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총선 결과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각각 19석, 17석을 가져갔다. 이에 경실련과 시민소송인단 80명은 비례대표 선거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비례용 위성정당 후보자 등록은 공직선거법상 무효인데 후보자 등록이 유효하다는 걸 전제로 선거가 진행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선관위가 정당 설립 목적이나 정치적 성격 등을 이유로 정당 등록을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각 정당이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한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각 정당이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민주적 심사 투표 절차 등도 갖추지 못했다거나 당헌·당규를 위반하는 등 공직선거법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소송단 법률대리인인 양홍석 변호사는 “위성정당 논란 당시 공직선거법에는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자를 추천하면 등록 무효’라는 조항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이 조항 관련 내용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선거소송은 대법원 단심제로 진행돼 이의신청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번 판결은 현직 대법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는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다. 현재 중앙선관위원장은 2020년 11월부터 노정희 대법관이 맡고 있다. 위성정당 논란 당시 중앙선관위원장은 권순일 전 대법관이었다. 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는 기관의 승인 사안의 잘잘못을 대법원이 최종 판단하는 구조인 셈이다.
헌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중에서 호선한다’고만 규정한다. 그런데도 역대 대법원장들은 현직 대법관만을 중앙선관위원으로 지명해 왔고, 이 사람이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중앙선관위원(장) 임기는 6년이지만 대법관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교체된다. 대법관의 중앙선관위원장 겸직 기간이 이인복 3년6개월, 김용덕 1년3개월, 권순일 2년10개월 등으로 짧은 이유다. 노정희 위원장도 대법관 임기가 끝나는 2024년 8월이면 물러나야 한다.
이를 두고 헌법학계에서는 3권분립에 맞지 않는 위헌적 관행이라는 지적이 계속 돼 왔다. 특히 각급 선관위가 적발한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가 검찰을 거쳐 법원으로 넘어가는 구조에서, 위법 여부를 최종 판단해야 할 사법부가 ‘현직 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 겸직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정희 대법관이 속한 소부와) 이번 판결 대법원 소부가 달라 ‘자기 사건 판결 불가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선거 관련 판결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겸직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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