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피의자의 휴대전화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자백이 있더라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30대 남성 회사원인 ㄱ씨는 2018년 3월10일 새벽 4시께 경기 안산시의 한 여자 화장실에서 피해자를 불법 촬영하려다 걸려 수사를 받게 됐다. 그해 4월7일 영장을 받아 ㄱ씨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하던 경찰은 3월10일 당시 범행 흔적은 발견 못했다. 대신 ㄱ씨가 그해 3월9일부터 4월2일까지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24차례에 걸쳐 학생들 교복 치마를 불법 촬영한 영상을 발견했다. 경찰은 휴대전화를 살펴보는 과정에 ㄱ씨를 참여시키거나 참여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고, 검찰은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지 않았다. ㄱ씨는 영상을 보고 범죄사실을 자백했다.
1심은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별도 범죄혐의의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하면 더 이상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별도의 범죄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적법하게 수사했어야 했다.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수집된 증거라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각 동영상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로 사용될 수 있고 영장 혐의사실과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원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면서도 “(각 동영상 탐색 등 과정에서) 피고인 참여권이 보장됐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어 각 동영상은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도 지난해 11월 준강제추행 및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ㄴ씨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휴대전화 등을 통해 별도의 범죄 혐의를 발견했더라도 따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거나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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