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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몸도 가누지 못하는 70대 환자는 자신을 돕던 이를 추행했다

등록 2022-01-24 16:37수정 2022-01-25 02:35

[가장 보통의 재판]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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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나온 ㄱ씨(75)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끊임없이 머리를 움직였다.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움직임들이었다. 그는 15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61살 때 시작된 병은 지난 세월 그의 몸을 서서히 결박해왔다. 근육은 굳어지고, 몸의 특정 부위는 의도와 관계없이 떨려왔다. 아내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 법정에 선 이유다. 스스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75살 노인의 혐의는 ‘강제추행’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여름 불거졌다. 정기적으로 안과 진료를 받아오던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오랫동안 병원을 찾지 못했다. 감염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는 진료를 미룰 수 없게 되자, 지난 여름 평소 다니던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조무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 밀었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던 그를 안전하게 계단 아래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서였다. ㄱ씨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간호조무사는 그를 부축했다. 이 과정에서 신체가 밀착되자, ㄱ씨는 순간적으로 그를 추행했다.

ㄱ씨와 변호인은 법정에서 이런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제출된 증거도 모두 동의했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피해자를 추행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ㄱ씨 변호인이 말했다. ㄱ씨도 “도움을 준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먹어서는 안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억울한 기색 또한 숨기지 않았다. “죽을 죄를 지어 죄송스럽지만, 경찰에서 끝나는 줄 알고 혐의를 인정하고 나니 과장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범죄가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ㄱ씨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들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아무 힘도 없고, 이빨도 다 빠져있고, 하루 종일 눈도 뜨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허리가 90도로 굽어서 잘 때도 옆으로 누워서 잘 수밖에 없습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그의 변호인도 “(ㄱ씨는) 최근 신체 활동이 더욱 제한돼 용변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건강 상태를 참작해 달라”고 했다.

파킨슨병은 주로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겨 근육이 굳어지면서 행동이 느려지고, 손이나 발, 머리 등이 떨리는 증상도 나타난다. ㄱ씨는 이날 법정에서 “병원에서 진단받은 기대 여명보다 4~5년가량 더 살았다. 앞으로 많이 살아봤자 1년 남짓한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ㄱ씨와 같은 70대 남성의 성폭력 범죄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의 고령범죄자 통계를 보면, 71살 이상 남성 성범죄자 수는 2011년 235명에서 2019년 905명으로 9년만에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은 796명으로 전년보다 12%(109명) 감소했지만, 10년 전과 견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재판부는 첫 재판에 모든 변론 절차를 마치고 바로 선고했다. ㄱ씨가 거동이 불편한터라, 선고 기일을 따로 잡지 않은 것이다. 그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은 죄를 인정하고 있고,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를 바탕으로 보면 유죄가 인정된다.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지만, 질병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판사는 말했다. 일반강제추행의 양형기준은 징역 6개월~2년이다. 검찰이 요청한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과 취업제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ㄱ씨는 아내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기대 법정을 빠져나갔다. ㄱ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하지 않았다. 징역 8개월의 형 집행은 유예됐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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