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1월25일 총기사고를 당한 뒤 끝내 숨진 김응서씨의 생전 모습. 군입대 뒤 정복을 입고 찍은 사진. 당시 김씨의 아내는 “(남편이) 입대 뒤 침울하고 멍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고 기억했다. 아들 김재룡씨 제공
1958년 11월25일 밤, 강원도 철원군 6사단 한 군부대의 방독면 창고에서 카빈총 총성이 울렸다. 총에 맞은 이는 24살 김응서씨였다. 병원으로 옮겨진 김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난 처자식이 있어서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1959년 1월3일 끝내 숨졌다. 한 살 어린 아내와 입대 직전 해 태어난 두살배기 아들만 세상에 남겨졌다.
당시 군은 김씨의 가족들에게 바로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아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군은 김씨의 아내에게 연락해 ‘유골을 확인하라’는 말로 부고를 대신했다. 군의 공식문서에 ‘총기 오발’이라고 나와 있을 뿐 누가 총을 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김씨의 아내는 아들을 업고 국방부와 보훈처를 오가며 남편의 사망 원인 등을 문의했지만 10년이 지난 1969년 5월, 국방부에서 사망 사실만 적힌 ‘순직확인서’만 받을 수 있었다. 진실을 찾고, 정당한 피해보상을 받기 위한 유족들의 오랜 싸움이 시작됐다.
최근 유족들은 김씨의 죽음으로 인한 63년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작은 승리’를 거뒀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군인사망급여금 지급을 거절한 강원서부보훈지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춘천지법 행정1부(재판장 윤정인)는 지난 1월11일 원고(김씨의 아들) 승소 판결을 하며 군과 보훈지청의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군이 김씨 사망 직후 유족에게 사망통지를 바로 하지 않고, 순직확인서에 보상 청구를 위한 사망원인·사망일시를 제대로 기재하지 않아 유족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막았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지난해 6월 김씨의 유족은 “국방부가 사망보상금 지급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라”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진상규명위)의 결정에 근거해 강원서부보훈지청에 군인사망급여금을 신청했다. 사건을 대리한 양성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군진상규명위의 결정에 따라 피해자나 유족이 사망보상금을 청구해도 소멸시효를 이유로 기각된 사례가 많은데, 이번 판결은 위원회 결정을 존중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소장한 김응서씨 생전 사진. 아들 김재룡씨 제공
아버지 사망 당시 두살이던 아들 김재룡씨는 65살이, 남편을 군대에 보낸 새댁이었던 어머니는 88살이 됐다. 시인으로 등단해 굴곡진 가족의 삶을 시로 풀어내 온 아들은 법원의 판단에 대해 “가족들이 애도의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 보낸 게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 제사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그걸 보니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비로소 이뤄졌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들이 이번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아버지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인민의용군 포로 출신이던 아버지가 가혹행위를 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아버지 군 동기에게 아버지를 괴롭히던 선임이 있었고, 그가 총을 쐈다는 풍문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노력 끝에 국방부로부터 2014년 10월에 받은 순직자 병상일지와 매화장보고서(전사기록지)는 의문만 남겼다. 병상일지엔 ‘보초 중 카빈총 오발로 인한 부상’이 사인으로 적혔지만, 매화장보고서에는 ‘병사’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새로 출범한 군진상규명위에 진정을 냈지만 ‘총기 오발 사고’라는 조사결과만 받았을 뿐, 누가 총을 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들은 법원이 “국가가 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을 제정해 유족에 대한 피해복구를 위한 조치를 선언한 것은 (이같은) 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주장해 보상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며 아버지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들은 “개인이 겪은 폭력에 대해 국가와 군이 책임지지 않는 일이 이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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