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근로계약에서 근로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는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이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임금을 청구한 ㄱ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ㄱ씨는 호봉제가 실시되던 1994년 3월 ㄴ학교법인 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됐다. 2005년 4월 정교수가 됐는데 따로 임용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ㄴ학교법인은 1998년까지 호봉제를 유지하다 1999년 연봉제로 급여지급 규정을 바꿨다. 학교법인은 18년이 지난 2017년 8월에야 뒤늦게 ‘1999년 연봉제 임금체계 변경’ 건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전임교원 145명 가운데 100명이 찬성해 급여지급 규정 변경이 가결됐다.
ㄱ씨는 ‘학교법인의 연봉제 시행은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하는데도 노동자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2007~16학년도에 호봉제를 적용했을 때 자신이 받았을 임금과 그 차액분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4차례 냈고, 법원에서 승소한 바 있다. ㄱ씨는 2017학년도에 호봉제에 따라 지급받아야 할 급여액과 실제 지급받은 급여액 차액분 3600만원을 지급하라며 또 다시 소송을 냈다.
1심은 ㄱ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급여체계를 변경해 기존 호봉제 아닌 연봉제 방식으로 지급했고, 이로 인해 ㄱ씨 보수가 삭감됐다. 2017년 8월 연봉제 변경 동의가 적법해도 유리한 근로계약에 우선해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변경 동의일인 2017년 8월 이후부터 2018년 2월까지 ㄱ씨 급여액 산정에 연봉제 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고 봤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이는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을 상회하는 근로조건을 개별 근로계약에서 따로 정했을 때 한해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ㄱ씨와 학교법인은 별도로 임용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적어도 2017년 8월 연봉제 임금체계에 대해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얻은 뒤에는 ㄱ씨에게 취업규칙상 변경된 연봉제 규정이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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