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을 제외한 전국 16개 지방자치단체는 ‘독서실 남녀 혼석 금지’ 조례를 두고 있다. 대법원이 입법경위를 살펴보니 ‘면학분위기 조성 및 성범죄 예방’이 목적이었다. 대법원이 전북도 조례에 대해 헌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21세기판 남녀칠세부동석’ 조항을 둔 나머지 지자체도 조례 개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독서실 운영업체가 전북전주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교습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전주교육지원청은 2017년 12월 ㄱ사가 전주시에 신설 등록한 독서실을 현장점검했다. 교육지원청은 “열람실 남녀별 좌석 구분 배열이 준수되지 않았고 배치도상 남성(여성) 좌석으로 지정된 곳을 여성(남성)이 이용해 남녀 이용자가 뒤섞여 있다”고 지적했다.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는 학원 열람실 시설기준으로 ‘남녀별 좌석이 구분되게 배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전북도 조례는 1991년 3월 신설됐다. 당시에는 ‘열람실은 남녀로 구분하고 출입문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이후 공간 분리 자체는 다소 완화됐지만 남녀 분리는 계속 유지된 것이다. <한겨레>가 전국 17개 지자체 조례를 확인한 결과, 충남(2017년 5월 해당 조항 삭제)을 제외한 서울·경기 등 나머지 16개 지자체가 같은 조항을 두고 있다.
전주교육지원청은 이 조항을 근거로 ㄱ사 독서실에 대해 열흘 간 교습정지 처분했다. 이에 반발한 ㄱ사는 소송을 냈다. 교육지원청은 “열람실은 24시간 운영이 가능해 범죄 발생 우려가 높다. 동일공간에서 남녀 좌석배열 구별은 최소한의 조치”라고 항변했다. 1심은 업체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위법인) 학원법에는 열람실 운영방법으로 남녀 혼석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해당 조례는 위임입법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또 “동일공간에서 좌석배열을 따로 한다고 해서 범죄가 예방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상위법인 학원법에 있던 남녀 좌석구분 조항이 2006년 삭제됐지만, 관련 시설기준을 지자체 조례로 넘겼다는 이유에서다. 쟁점이 됐던 남녀 혼석 금지에 대해서도 “혼석 남녀 사이 빈번한 대화 등으로 인해 학습분위기가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 혼석이 성범죄 가능성을 반드시 높인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좌석 구분은 원하지 않는 이성과의 불필요한 접촉 등을 차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독서실 운영자·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남녀 좌석을 구분해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것은 사적 영역에 지자체가 지나치게 후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남녀 혼석 금지로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 역시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장소 용도 등과 상관 없이 성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불합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스터디카페 등 남녀 혼석이 허용되는 학습공간이 많은 상황에서 독서실만 금지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학습분위기 역시 같은 성별끼리도 얼마든지 저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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