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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가명)씨는 50대 남성으로 공무원 퇴직 후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술을 좋아해서 거의 매일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했지만 큰 실수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편이어서 직장 내에서도 젊은 사원들과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6개월 전부터 이전에 없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고집이 세지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해도 잘 듣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뜻을 우기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영씨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작은 소리로 욕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직장 동료들과 후배들이 수영씨와 함께 일하기 힘들다며 회사에 진정을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달 전에 수영씨는 수영씨의 어머니 병원비 문제로 아내와 언쟁을 했습니다. 근데 이전과는 다르게 소리를 지르며 아내에게 욕을 하고 집에 있는 컵을 마룻바닥에 집어던져 박살이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놀라서 그를 진정시켰지만 수영씨는 화를 참지 못했고 결국 다시 소리를 질러 옆집에서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수영씨의 아내와 자녀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화가 나면 눈에 살기가 느껴지는 그를 보고 수영씨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수영씨가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었습니다. 회사 직원이 가져온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보고서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직원은 회사에 수영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였고, 수영씨를 아껴주던 사장님도 더 이상 도와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수영씨는 회사에서 불명예스럽게 파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집에서 이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가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아내에게 집어던져 아내의 얼굴에 상처가 났습니다.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가게 되었고, 수영씨는 이혼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수영씨는 자녀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보기에 수영씨는 이전과 성격이 전혀 달라져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쉽게 화를 내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도 해당 직원에게 앞으로 잘하라고 훈계를 한 것뿐인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오히려 직원의 인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자녀들이 보기에 이전의 신중하고 사려 깊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직장에서 사직당한 것에 이어 아내와도 이혼하게 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수영씨의 아내, 자녀와 함께 수영씨를 진료했습니다. 먼저 인지기능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기억력은 정상 범위에 있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는 능력인 실행기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생각이 단순하고 융통성이 없어지고 고집이 세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이마쪽에 있는 전두엽과 양쪽 측두엽의 전방부에 위축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마 쪽 두개골과 뇌 사이에 빈 공간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결국 수영씨는 전두엽과 양쪽 측두엽의 위축에 의해서 성격 변화가 나타난 것인데 이를 ‘전두측두엽 치매’라고 합니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전체 치매의 2~5%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후 부검한 치매 환자에서 5~10%까지 발견됩니다. 일찍 발병하는 특징이 있어서 60세 이전에 발생한 치매에서 더 자주 나타납니다. 전두측두엽 치매가 오면 절제가 잘 되지 않는데 이전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행동도 흔히 동반되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서 가정폭력, 음주운전,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폭력성이 자신에게 향하면 극단적인 행동의 위험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비해 기억력 저하는 초기에 많지 않아 치매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전두측두엽 치매의 20~40%에서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부모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치매가 있었다면 주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영씨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님도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영씨는 부인과 자녀와 함께 검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부인이나 자녀도 수영씨의 성격 변화가 전두측두엽 치매의 초기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수영씨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그 직원에게도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하였습니다.
수영씨는 치료 후에 다시 이전의 차분하고 사려 깊은 성격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아내나 자녀가 이야기하면 신중하게 듣고 되도록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음주와 흡연을 줄이고 하루에 1만보 걷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직장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가정은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유 없이 흥분하거나 급해지면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뇌 전두엽은 위축되었지만 치료를 통해서 마음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