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판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마스크는 무상으로 나눠 주더니 자가검사키트(신속항원검사키트)는 왜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15일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사는 김태갑(76)씨는 시에서 자가검사키트 무상 배부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에 울분을 토했다. 인구 6만여명인 삼척에선 14일 하루 확진자 76명 등 연일 최다 확진자 수를 경신하고 있다. 자가검사키트 수요가 폭증했고, 시민들은 약국과 편의점을 전전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삼척시는 주민 편의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자가검사키트 7만개를 확보해 14일부터 전 가구에 1개씩 배부할 계획을 세웠다가 선거관리위원회 불허 통보를 받은 뒤 취소했다. 이와 관련해 강원도선거관리위원회는 “마스크는 정부 지침이 있어 무상 제공이 가능했다. 현재는 감염병 관련 법령이나 정부 지침 등에 이를 (무상) 제공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도 2만5천가구에 1개씩 키트를 배부하려 했지만 중단했다. 권영수 울진군 안전재난과 주무관은 “선관위로부터 기부행위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듣고 포기했다”고 말했다.
■ 기부행위 불법 vs 재난예방 우선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자가검사키트 품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선제 대응에 나섰지만 선거법이 발목을 잡으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삼척시나 울진군처럼 지급을 미룬 지자체도 있지만, 선관위로부터 ‘조건부’ 지급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받고 자가검사키트를 지원한 지자체도 있다. 전북 임실군은 자가검사키트 3만개를 사 지난 14일부터 주민에게 무상 지원하고 있다. 신항섭 임실군 안전관리팀장은 “읍면사무소에서 주민 신청을 받으면 직접 공무원이 자가검사키트를 들고 찾아가 검사한다. 직접 나눠 주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가 없다는 게 선관위 답변이었다”며 “무증상 확진자도 여럿 나오는 등 감염 확산 방지에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서울시 성동구는 선관위 질의 없이 감염병 관련 법률에 따라 지난 10~11일 초등학생 1만1천여명에게 자가검사키트를 배부하기도 했다. 성동구 거주 초등학생 세대주나 세대원이 동주민센터에서 1인당 2개씩 받아 가는 방식이다. 유보화 성동구 부구청장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구청장이 어린이,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의료방역물품 지급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봤다. 마스크를 감염 취약계층에게 제공한 것과 같은 차원”이라며 “선거와 무관하게 재난 예방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조례 있으면 지급? 혼선 빚는 지자체 선관위가 ‘법령’, ‘지침’ 등을 강조하는 와중에 울산광역시 울주군은 감염병 관련 조례에 따라 3월까지 주민 22만명에게 2개씩 44만개 이상을 무상 제공할 계획을 세웠다. 지자체의 조례 유무에 따라 자가검사키트 지원 여부가 갈리게 된 셈이다. 권건주 삼척시 자치행정팀장은 “조례를 제정해 지급하려면 최소 3개월은 걸린다”며 “마스크나 재난지원금처럼 각 지자체 상황에 맞게 방역물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침을 내려주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지자체로부터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상황을 정리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수혁 손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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