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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서서히 근육 마비되는데, 3살 이전 발병 어떻게 입증해요”

등록 2022-02-16 14:38수정 2022-02-17 14:38

성인된 근육 약화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들
연간 억대 치료비에 막막…“보험 급여적용 확대” 요구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 앞에서 열린 ‘척수성근위축증 환자(SMA)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및 건강심사평가원 면담촉구 기자회견’에 환자들과 장애인단체 회원 30여명이 참석했다. 박지영 기자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 앞에서 열린 ‘척수성근위축증 환자(SMA)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및 건강심사평가원 면담촉구 기자회견’에 환자들과 장애인단체 회원 30여명이 참석했다. 박지영 기자
1982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난 노금호(40)씨는 2살 때부터 몸에 힘이 없고 잘 넘어졌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노 씨를 보며 부모는 ‘걸음마가 느린가 보다’며 넘겼다. 부모는 4살 무렵까지 아들의 걸음걸이가 나아지지 않자 경북대학교 병원을 찾았고 근육질환인 ‘근디스트로피(PMD)’ 판정을 받았다. 30년 넘게 자신의 질환을 근디스트로피로 알고 있었던 그는 근육 마비가 점점 심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고, 지난해 4월 희귀질환인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SMA)’이 정확한 병명임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에스엠에이(SMA)는 운동 기능에 필수적인 생존운동신경세포 단백질 결핍으로 전신의 근육이 점차 약화되는 희귀질환이다. 이전에는 치료제가 없었으나 2016년 최초로 근육 약화를 지연하는 ‘스핀라자(뉴시너센나트륨)’가 개발됐다. 주사 한 대당 9300만원의 비용이 들고 보통 1년에 4번 맞아야 한다. 지난 2019년부터 국내에도 보험 급여가 적용돼 1년에 약 1700만원이면 치료제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노씨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수억원의 치료비용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노씨 같은 이들은 또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에스엠에이 환자 및 스핀라자 투약 현황’ 자료를 16일 보면, 2021년 우리나라 전체 에스엠에이 환자는 4666명이다. 환자 단체 쪽은 이중 스핀라자 치료제를 투여받아야 하는 환자는 200여명 정도라고 한다. 자료를 보면 지난해 스핀라자 보험을 청구한 환자는 136명이다.

에스엠에이 환자들과 장애인단체는 대다수가 만 3살 이전 발병 여부 등을 증명하지 못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상대로 “치료제 급여적용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심평원 약제급여기준 소위원회는 △만 3살 이하에 에스엠에이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 △5q SMN-1 유전자(질병 관련 유전자)의 결손 또는 변이의 유전자적 진단 △영구적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만 치료제 보험 적용을 하고 있다.

‘만 3살 이하 발병’기준에 대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평가위원회는 <한겨레>에 “전체 에스엠에이 환자의 90% 이상이 3살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다. 나이가 어릴수록, 증상발현 후 경과기간이 짧을수록 (치료제 효과가) 좋다”며 “만 3살 이후에 발생하는 환자의 경우는 운동기능 장애 등 증상이 서서히 진행하지만 자연수명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엠에이 질환 특성과 호주 등 외국의 급여기준을 감안, 전문가회의를 통해 만 3살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 환자들을 급여 대상으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 앞에서 열린 ‘척수성근위축증 환자(SMA)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및 건강심사평가원 면담촉구 기자회견’에서 노금호(40)씨가 발언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 앞에서 열린 ‘척수성근위축증 환자(SMA)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및 건강심사평가원 면담촉구 기자회견’에서 노금호(40)씨가 발언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하지만 환자들과 장애인단체들은 성인 환자들이 3살 이전 발병을 증명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대부분 환자들이 병원을 제때가지 못했거나, 오래전 기록을 찾을 수 없어 3살 이전 발병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노씨는 3살 이전 발병 기록을 제출하기 위해 과거 진료를 받았던 병원을 방문해 1986년 기록을 찾았다. 노씨가 4살 때 병원을 찾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기록에는 만 4살 때 처음 증상이 시작됐다고 적혀 있었다. 노씨는 지난해 7월 ‘만 3살 이전에 임상 증상과 징후가 발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담당 의사 소견서와 2살 무렵 사진 등을 제출했지만 심평원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만 3살 이하 척수성근위축증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 여부가 명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다”며 보험 적용을 불승인했다. 노씨는 “담당 의사도 안타까워하더라. ‘어렸을 때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갔으면 어땠을까’ 자책하실까 봐 보험 적용 탈락했다고 부모님께 알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른팔 마비가 점점 심해져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3살 이전 발병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3살 이후 발병한 성인 환자들은 “치료제는 완치가 아니라 근육마비 악화를 지연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여하는 것인데 손을 놓고 있어야 하냐”고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양지원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사무국장은 “근육병은 특수한 질환이고, 마비가 진행되는 걸 멈추는 것만 해도 큰 치료 효과”라고 말했다. 에스엠에이 환자 ㄱ씨도 “하루라도 빨리 치료제를 맞지 않으면 근육병이 계속 진행돼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던 팔도 결국 마비되고, 나중엔 호흡도 약해질 것이다. 3살 이전 진단서 한 장 가지고 있지 않다고 급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에스엠에이 관련 치료제가 계속 개발되고 있는 만큼 3살 이전 발병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3살 이후에 발병한 환자들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은 “스핀라자가 다수의 국제 임상 시험에서 만 3살 전에 증상이 나타난 환자들에게서 비교적 좋은 효과를 보였다. 심평원의 기준을 이해는 한다”면서 “최근 스핀라자 외에도 다양한 최신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3살 이후 에스엠에이 진단받은 환자들을 위한 효율적인 치료와 이를 위한 보험 급여 방식을 심도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과 장애인단체 요구에 대해 심평원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급여적용 기준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 앞에서 열린 ‘척수성근위축증 환자(SMA)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및 건강심사평가원 면담촉구 기자회견’에 환자들과 장애인단체 회원 30여명이 참석했다. 박지영 기자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 앞에서 열린 ‘척수성근위축증 환자(SMA)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및 건강심사평가원 면담촉구 기자회견’에 환자들과 장애인단체 회원 30여명이 참석했다. 박지영 기자
글·사진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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