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사진 오른쪽)씨가 아파트 경비원과 함께 종이가방을 정리하고 있다.
“경비아저씨도 ‘기부 바이러스’ 감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려진 종이가방을 모아 돈으로 바꿔 기부를 하는 40대 주부가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사는 이미경(42)씨가 그 주인공. 이씨는 지난해 7월부터 아파트 단지 안 30군데가 넘는 수거함에서 종이가방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맛비가 쏟아져도 꼬박꼬박 일주일에 200여점을 모아 차에 싣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백화점 매장에서 한꺼번에 바꿔주지 않는 곳이 많아 층마다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이렇게 종이가방 하나에 100원씩 돌려받는 일을 6개월째 하고 있다. 이씨는 3년간 후원자로 활동해온 사랑의전화복지재단에 최근 종이가방 6000점을 바꿔 모은 돈 60만원을 전달했다. “젊어선 사회봉사나 기부에 대해 전혀 몰랐죠. 살다보니 소비에 익숙해져 인생마저 소모품처럼 소비되고 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지난해 여름, ‘정신을 차린’ 이씨 앞에 버려진 종이가방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씨를 도운 것은 놀랍게도 이씨가 종이가방을 주으러 다닐 때마다 핀잔을 주던 아파트 경비원들이었다. 처음엔 종이가방을 찾아 수거함을 뒤지는 이씨에게 화를 내던 경비원들이 동참하기 시작해 15명이 함께 이 일을 했다. 지금도 6명의 경비원들과 ‘합작사업’을 하고 있다. 이씨는 ‘기부 바이러스’를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염’시키고 있다. “한 경비원 아저씨는 제가 하는 일에 감동받았다며 단지에 버려지는 고물들을 모아 한 달에 1만원씩 구청 복지원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도 형편이 어려운데 지금까지 13만원을 모으셨어요.” 이씨의 남편과 두 아이들도 이젠 자기들이 먼저 모은 종이가방을 들겠다고 다툴 정도라고 한다. 이씨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단지에서 나오는 중고물품을 싼 값에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고 싶어요. 사랑처럼 기부에도 경계란 없으니까요.” 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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