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을 막기위해 은행이 자동화기기(ATM)에 설정한 ‘1인당 1일 100만원’ 입금 한도를 피하기위해,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로 수차례 ‘쪼개기 송금’을 한 것은 은행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사기와 사문서위조,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ㄱ씨는 2020년 11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건당 약 30만원을 받기로 하고 금융기관 직원 등을 사칭해 가명으로 피해자들을 만나 돈을 받은 뒤, 수익금을 송금하는 ‘전달책’ 역할을 맡았다. ㄱ씨는 이를위해 조직원으로부터 제3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적힌 명단을 받았다. 은행은 보이스피싱을 막기위해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무매체 입금 거래 한도를 ‘1인당 1일 100만원’으로 설정했는데, 무매체 입금을 하기 위해서는 자동화기기에 입금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이에 ㄱ씨는 조직원으로부터 받은 명단을 이용해 2021년 2월까지 29회에 걸쳐 총 494명의 이름 등으로 ‘쪼개기 입금’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ㄱ씨는 또 범행으로 2억3900여만원을 편취해 사기와 사문서 위조 혐의로도 기소됐다.
1,2심은 ㄱ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일부 피해자들에게 총 1억원 가량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에서는 ㄱ씨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100만원씩 ‘쪼개기 송금’을 한 것이 ‘위계’로 은행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위계란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방에게 오인·착각 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업무와 관련해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킨 상대방이 없었던 경우에는 ‘위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거래 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자동화기기에 제3자 이름 등을 입력하고 1회 100만원 이하 무매체 입금을 하는 과정에서 은행 직원 등 다른 사람의 업무가 관여됐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했다. 이어 “ㄱ씨 행위는 업무방해죄에 있어 위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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