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배우자가 한국에 들어와 생활한 뒤 얼마 안 있어 가출했다는 사정만으로 쉽게 혼인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문화차이 등을 감안해 혼인 합의 여부를 더 세심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ㄱ씨가 베트남인 배우자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40대인 ㄱ씨는 국제결혼 주선업체를 통해 20대 후반 베트남 여성 ㄴ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17년 6월 혼인신고를 했다. 같은 해 11월 ㄴ씨는 대한민국에 입국해 ㄱ씨와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입국 뒤 ㄴ씨는 ㄱ씨와 그 부모 및 형과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ㄴ씨는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고 생활비도 부족해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입국 한달 뒤 ㄴ씨는 외국인등록증, 여권 등을 들고 가출했고 연락도 두절됐다. ㄱ씨는 이에 혼인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ㄴ씨는 ‘경제적·심적으로 어려움을 주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ㄱ씨가 약속’했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1심은 한국인 남편 ㄱ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ㄴ씨가 가정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점” “ㄱ씨와 성관계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점” “국제결혼 신상확인서에 직업 등을 허위로 기재한 점” 등의 이유를 들어 ㄴ씨가 진정한 혼인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봤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ㄴ씨가 단기간 내 집을 나갔다는 등 사정만으로 혼인 합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혼인 의사가 없었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진정한 혼인 의사를 갖고 결혼해 입국했어도 상호 애정과 신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인 부적응, 결혼을 결심할 당시 기대했던 한국 생활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감 등으로 단기간에 혼인관계 지속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이 베트남 배우자와 혼인하기 위해서는 양국 법령에 정해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언어 장벽이나 문화와 관습의 차이 등으로 혼인생활의 양상이 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정도 감안해 당사자 사이 혼인의 합의가 없는지 여부를 세심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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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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