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6일 밝힌 ‘검찰권 오남용 인정된 사건 및 부실수사로 책임져야 할 검사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3월, 김학의 당시 법무부 차관은 ‘원주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되면서 취임 6일 만에 사퇴했다. 경찰은 그해 7월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 등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그해 11월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어 2014년 재수사가 진행됐으나,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강해운)는 그해 12월 또다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18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김 전 차관을 2019년 6월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애초 검찰의 뭉개기·봐주기 수사로 김 전 차관은 끝내 처벌을 면했다.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그를 둘러싼 의혹의 진상 규명과 단죄는 실패로 일단락된 것이다.
‘윤우진 전 세무서장 육류업자 스폰서 의혹’도 검찰 재수사 끝에 기소가 이뤄진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5년 검찰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의 친형인 윤 전 서장을 무혐의 처분을 내려 ‘봐주기 수사’ 비판이 일었던 의혹이다. 윤 전 서장은 현직이던 2012년 육류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국외로 도피한 뒤 8개월 만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6차례나 기각했고, 결국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조기룡)는 2015년 윤 전 서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2019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이 다시 제기됐고, 주광덕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윤 전 서장을 고발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3부(부장 임대혁)는 지난해 12월 윤 전 서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으로 기소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6일 펴낸 이슈리포트 ‘뒤집힌 그 사건, 그때 그 검사’를 보면, 이처럼 전 정부에서 검찰의 부실한 수사나 무리한 수사로 논란이 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수사가 이뤄져 다른 결론이 나온 대형 사건은 모두 8건으로 집계됐다. 소개된 사건들은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정치권력이나 재벌에 대한 봐주기 수사, 검사에 대한 봐주기 수사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들로 문재인 정부 들어 재수사에 나서 바로잡힌 것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도곡동 땅 의혹이다. 당시 검찰은 이와 관련해 이 후보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2008년 특검도 당선인 신분이던 이 전 대통령을 수사했지만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2018년 특별수사팀을 꾸려 재수사 끝에 이 전 대통령을 횡령,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대법원은 2020년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을 확정했다. 의혹이 제기된 지 13년 만의 일이다.
2012∼2014년 수사가 이뤄진 ‘국정원과 검찰의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은 검찰권 오남용이 인정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2012년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씨를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기소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유씨에게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기각 판결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검찰은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해경 부실구조 수사’ 당시 해경 지도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2020년 재수사 끝에 해경 수뇌부 11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또 검찰은 2013년 ‘삼성 노조 와해 의혹’ 수사에서 임원진들을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했으나, 2018년 재수사로 임직원 45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2012년 18대 대선 국정원 댓글공작’ 등에 대한 수사도 2018년 재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참여연대는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 요구와 과거 부실수사에 대한 재수사 요구를 받았다. 검찰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과거 부실수사에 대한 재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그 결과 다수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됐고, 무혐의 처분됐던 피의자들이 수년 만에 구속기소된 사건들도 나왔다”고 밝혔다. 이날 참여연대는 이들 사건과 관련한 수사 책임자도 공개했다. 2011~2015년 사이 각각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최교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조영곤 변호사 등이다.
참여연대는 “과거 잘못된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들에 대한 수사나 징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검사가 영전하다 사직해 전관변호사 생활을 이어가거나 정치에 입문했다. 책임져야 할 검사들이 사과도 처벌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한, 검찰개혁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책임져야 할 검사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검찰권 오남용의 어두운 역사와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피해자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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