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새로 꾸려진 재판부에 “핵심 증인 33명의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재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공판갱신절차만 2년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의도적 재판 지연 전략이라고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 심리로 10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임 전 차장 변호인은 “핵심 증인 33명의 녹음을 들어보는 게 낫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임 전 차장 쪽은 그동안 이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을 핵심 증인(33명)·주요 증인(94명)·기타 증인(29명)으로 나눈 뒤 “핵심 증인은 (사건) 실체에 대해 진술하고 있고, 검찰 조사 때와 다르게 진술한 게 있어서 (법정에서) 녹음을 들어보는 게 낫다. 주요 증인은 증인신문조서의 주요한 부분을 제시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하고, 기타 나머지 증인은 요지만 고지하는 방식으로 (공판갱신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임 전 차장 쪽은 주요 증인으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최우진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심의관, 이원 전 대법원 총괄재판연구관, 김종복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공법 담당 심의관, 박상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 등을 꼽았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재판이 비효율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핵심 증인 33명(의 녹취 파일)을 직접 들어보는 것은 공판갱신절차가 지루하게 늘어질 수밖에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은 증인 11명에 대해 녹취를 들어보는 절차만 5개월 걸렸는데, 33명은 세 배 이상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심 증인 녹음을 듣는 것만 1년이고 총 공판갱신만 2년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공판갱신절차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재판부에서 합리적인 선에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임 전 차장 변호인은 “그쪽(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11명 (증인 녹취재생을) 했다는 점 때문에 33명이 많다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별도의 재판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은 지난해 공판갱신절차로 71명 증인 중 핵심 증인 11명의 증인신문 녹취 파일을 법원에서 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판갱신절차에만 7개월 가량이 걸렸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이 추린 핵심 증인 명단 등에 대한 검찰의 정리된 의견을 받아보고 녹취재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증인이 실제 (법정에) 나와서 (재판부가) 증인에게 집중하면서 듣는 것과 그냥 목소리만 듣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잘못하면 집중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절차만 지연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쪽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부분은 재판부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사법농단’ 연루자 중 가장 먼저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은 2018년 말부터 3년 넘게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방대한 증인신문과 임 전 차장의 반복적인 재판부 기피 신청에 따른 결과다. 지난달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 3명이 모두 바뀌면서 공판갱신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임 전 차장 주장대로 수십명의 증인에 대한 신문 녹취재생이 이뤄질 경우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5~6년 이상이 걸리게 된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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