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김현희(25)씨가 지난 2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이후 8시간 동안 머물렀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보건소 선별진료소 앞 벤치에 앉아 있다. 고병찬 기자
“목이 너무 아프고 열도 나서 어지러운데, 고시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곳에 앉아 있으니 춥고 창피했어요. 아무도 검사를 받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에서 만난 발달장애인인 김현희(25)씨는 벤치를 가리키며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은 지난 2일의 상황을 떠올렸다. 김씨는 2일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렸다. 김씨는 홀로 사는 3.3㎡(1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돌아가려니 집단감염을 우려하는 주인으로부터 입실을 거부 당할 것 같았다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아침 9시부터 고시원 주인이 입실을 허락한 오후 5시까지 8시간 동안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그는 확진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장애인 확진자들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홀로 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으러 가다 중증시각장애인 오아무개씨가 쓰러져 숨진 뒤 장애인단체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뚜렷한 개선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장애인 확진자의 장애 정도와 생활 환경은 재택치료 관리에서 고려되지 않고 있다. 가족이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인 김씨가 고시원에 머물러도 되는지,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갈 수 있는지 등 확진 이후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김씨를 돕는 장애인단체 활동가 3명이 유관기관과 고시원 주인에게 전화를 돌리며 대처 방안을 찾았다. 감염 우려를 고민하는 고시원 주인을 설득해 2일에는 고시원에서 머물 수 있었고, 이후에는 생활치료센터로 옮길 수 있었다. 김씨를 돕는 김혜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현희가 센터에 포착되지 않아 조력을 받지 못했다면, 지난 2일부터 격리해제가 될 때까지 현희는 하염없이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일 재택치료 상담소에 전화해 현희가 지적장애가 있으며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도 대답은 ‘고시원에 들어가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현재 재택치료는 무연고, 장애 정도, 경제적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활동지원사나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사정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김씨의 경우 다행히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위태롭게 재택치료를 견뎌내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코로나19 장애인 방치·책임전가 규탄 기자회견’에서 온 가족이 확진된 경험을 증언했던 중증 지체장애인 박현(47)씨는 “아내와 저 모두 중증장애인이기에 활동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29개월 아기까지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활동지원사가 방문을 거부했다. 계속 불안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장애인 확진자들의 치명률은 비장애인보다 높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5일 중앙방역대책본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코로나에 확진돼 사망한 장애인은 315명으로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인 치명률은 3.5%에 달했다. 20일 0시 기준 누적 치명률 0.13%와 단순 비교해도 약 26배 높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 치명률이 높은 데엔 장애인 중에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이 많은 탓도 있지만, 장애인이 확진됐을 때 장애 정도와 상황에 맞춘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확진자를 1일 2회 건강모니터링 받는 집중관리군으로 지정하고, 활동지원사가 이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도록 공적 돌봄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정부는 구체적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수정 대표는 “지난 2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에 장애인 확진자 대책 요구안을 전달하고, 4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과 장애인단체가 면담 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장애인 확진자 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다”며 “장애인이 확진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명확히 하고, 이에 따라 장애인 확진자를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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