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인 지난해 11월2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트랜스젠더, 잘 살고 있나요?’ 추모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21일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국가통계 조사항목 신설 등을 지난 16일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중앙행정기관 등이 수행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장관과 통계청장에게는 각 기관이 시행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등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조사항목을 신설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통계청장에게 통계청이 관리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개정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분류에서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는 고용, 교육, 미디어, 행정서비스, 의료시설이나 금융기관 이용과 같은 일상생활 전반에서 편견에 기반을 둔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권위가 지난 2020년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설문에 응한 트랜스젠더 588명 가운데 65.3%(384명)가 지난 12개월(응답일 기준)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특히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이 때문에 의료기관 이용(21.5%)·보험 가입 및 상담(15.0%)·은행 이용 및 상담(14.3%)·투표 참여(10.5%) 등을 포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국민보건의료실태통계조사, 가족실태조사 등 국가승인통계조사와 관련 법령에 따라 실시되는 각종 실태조사에서는 성별 정체성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수집하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이에 비추어 보면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집단이 정책 수립 대상 인구집단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중앙행정기관 및 통계작성지정기관의 국가승인통계조사와 각 기관의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해 정책 수립 등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와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항목에서 제외했지만, 우리나라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성전환증을 ‘정신 및 행동 장애’ 범주의 하나인 ‘성주체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인권위는 “이 같은 분류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고 혐오와 차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통상 5년 주기로 개정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조속히 개정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