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반부패공공범죄 수사과장이 20일 경찰청에서 부동산 투기사범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했는데, 신도시 발표가 나서 놀랐다. 확인해달라.”
지난해 2월24일 서성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제보 전화 한 통은 엘에이치 직원을 넘어 공직자의 땅 투기 의혹으로 일파만파 번졌다. 3월2일 민변과 참여연대가 엘에이치 직원 땅투기 의혹을 제기했고, 같은달 10일 정부는 1560명 규모로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려 땅투기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2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국회의원 6명과 가족 7명 등 13명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지방의원, 자치단체장, 고위공무원, 엘에이치 임원) 55명을 부패방지권익위원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고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뒤 경찰이 수사 역량 입증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것을 고려했을 때 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수사는 미진했던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의 발표를 보면, 검찰에 송치된 국회의원 포함 공직자 및 친인척이 424명으로 전체의 10%에 이른다. 국회의원 본인이 송치된 경우는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찬민·김승수·한무경·강기윤·배준영 국민의힘 의원 등 6명이다. 엘에이치 전·현직 직원들은 61명이 송치됐다.
이번 수사로 검찰에 송치된 전체 인원이 4251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검찰에 송치된 고위공직자 숫자는 적다. 국회의원(6명)과 고위공직자(55명)를 제외하면 공무원(197명), 공공기관 직원(82명), 공직자 친족(97명) 등으로 집계됐다. 공직자와 관련 없는 일반인이 약 90%(3827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사 대상 인원 대비 송치된 비율을 보더라도 국회의원(18.2%) 및 고위공무원(50%), 엘에이치 직원(62.5%) 등에 견줘 공직자와 관련 없는 일반인(73.5%)의 송치율이 가장 높았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공직자는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불법을 했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았다. 고질적 범죄를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엘에이치 사태를 촉발시킨 ‘내부정보 부정이용’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이번 수사의 한계로 지적된다. 내부정보 부정이용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인원은 595명(9.8%)에 그쳤다. △직접 농사 지을 생각없이 농지를 매입(1693명·27.8%)하거나 △부정 청약 등 주택 투기(808명·13.3%) △개발가능성 없는 임야 등을 매도하는 기획부동산(698명·11.5%) 등의 혐의로 송치된 인원이 더 많았다. 이미 법정에 간 사건 가운데 무죄를 받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부(부장 남천규)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신도시 예정지 일대의 부동산을 미리 매입한 혐의로 기소된 엘에이치 직원 3명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청은 이날부터 기존 특수본 운영체제를 상시단속 체제로 전환하고, 투기범죄 유형과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기획수사’를 병행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향후 정부의 대책이 ‘사후 단속·수사’보다도 근본적으로 미공개 정보 관련 ‘사전 관리감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성민 변호사는 “증거를 인멸할 경우 여러 정황과 투기 결과에도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평상시 공직자가 업무 중 다루는 비밀, 미공개정보를 누가 어떻게 취급하며 어떤 방법으로 관리감독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와 엘에이치 등을 대상으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둔 공익감사에 착수했으나, 아직 감사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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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땅투기 등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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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