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던 2015년 12월3일 당시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기관투자자 비리 수사를 놓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소장은 검사의 얼굴에 해당한다.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을 허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 11일 출범 1년2개월 만에 처음으로 김형준 전 부장검사를 뇌물수수 혐의로 직접 기소했다. <한겨레>는 21일 공수처 1호 기소 사건 공소장을 입수해 분석했다. 법조계에서는 핵심 혐의 내용의 구체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지적하면서도, 검찰이 덮고 가려했던 검사 비리를 기소한 것을 두고는 공수처 설립 취지를 살렸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공수처 압박을 예고한 상황에서, 1호 기소 사건 재판 결과는 공수처의 수사-기소-공소유지 능력에 대한 종합적 판단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이 사건 공소장은 A4 4쪽 분량이다. 검찰 출신인 이대환(사법연수원 34기) 검사가 기소검사로 도장을 찍었다. 김 전 부장검사에게 적용한 혐의는 세가지다. 2016년 3월과 4월 서울 강남 한 술집에서 옛 검찰 동료였던 박수종 변호사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51만원과 42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 받은 혐의, 그해 7월 박 변호사 돈으로 자신의 스폰서에게 1천만원을 주게 한 혐의다.
공소장에 뇌물죄 구성요건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2015년 11월 김 전 부장검사가 단장으로 있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으로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이 배당됐는데,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 2월 수원지검으로 발령났다. 박 변호사는 2017년 4월 서울남부지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뇌물수수 혐의가 입증되려면 인사이동 뒤 김 전 부장검사가 받은 금품·향응과 박 변호사 무혐의 처분 사이 직무관련성 및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공소장에는 “박 변호사 사건 처리에 대한 대가로” 세차례 금품과 향응 등을 받았다는 문장 외 별다른 설명이 없다. 한 변호사는 “보통 뇌물죄 공소장에는 금품수수와 직무관련성 및 대가관계를 명시한다. 법원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하라는 공소장 변경 요구를 할 수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공수처는 구체적 내용은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을 통해 법정에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덮고 지나갔던 1천만원 수수 혐의를 공수처가 재판에 넘긴 것은 검찰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검찰의 기소독점에 따른 제 식구 감싸기를 보기좋게 깼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전 부장검사의 금품수수 사실을 인지하고도 수사 대신 징계(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후 김 전 부장검사는 별개의 스폰서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공수처 1호 기소 사건은 지난 14일 부패전담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부장 김상일)에 배당됐다. 공수처는 첫 직접 기소 사건인 만큼 유죄를 받아내기 위한 공소유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죄가 날 경우 윤 당선자와 국민의힘의 공수처 무용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16일 내부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초대 처장으로서 공수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소임을 다할 생각”이라며 2024년 1월까지인 본인 임기를 모두 채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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