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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음식점에 도청장치 설치했던 ‘초원복집’ 판례 25년 만에 뒤집혔다

등록 2022-03-24 16:47수정 2022-03-24 17:42

대법 “식당 주인 몰래 카메라 설치, 주거침입 아냐”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법원 유튜브 갈무리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법원 유튜브 갈무리

상대방 대화를 몰래 녹음·녹화하기 위해 식당 주인 모르게 카메라나 녹음 장치 등을 설치했더라도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992년 대선 직전,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부산에서 정부기관장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사실이 도청으로 드러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서 도청장치를 설치한 이에게 주거침입죄를 적용한 1997년 대법원 판례가 25년 만에 바뀐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4일 주거침입죄로 기소된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전남 광양시의 한 운송업체 부사장 ㄱ씨와 회사 직원 ㄴ씨는 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회사에 불리한 기사를 쓰자, 향응을 제공하며 기자가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2015년 한 식당에 녹음 및 녹화 장치를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들은 그해 1월24일부터 2월12일까지 4차례에 걸쳐 식당 주인 몰래 녹음·녹화 장치를 식당에 설치하고 제거했다. 이들은 결국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주거침입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이들이 한 녹음 및 녹화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했다고 볼 수 없어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이런 행위가 불법행위 등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ㄱ씨 등이 방에 들어간 것 자체가 영업주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관 14명 가운데 11명은 원심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들 대법관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 방법으로 들어갔다면,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면서도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에 따라 침입 여부를 판단하더라도 거주자 의사에 반하는지를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삼아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별개의견을 냈다.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날 나온 판결로 1997년 나온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은 뒤집히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등이 1992년 부산 ‘초원복국식당’에 부산지역 기관장을 모아놓고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 조장’ 등을 모의했는데, 경쟁자인 정주영 당시 국민당 후보 쪽에서 몰래 이 내용을 녹음해 공개한 바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은 1997년 “음식점에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간 경우라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고 보아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인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 관련 판결들의 효력이 사라지거나 재심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관련 사건들을 하급심들이 판결할 때 새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만약 대화 상대방이 아닌 불특정인의 대화나 신체 등을 녹음·촬영하려는 목적으로 카메라 등을 불법적으로 설치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식당 등에 주인 허락 없이 몰래 들어간 경우라면, 주거침입죄도 함께 적용될 수 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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