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밀과 연어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힘든 자영업자들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계속 치솟는 물가가 버거운 소비자들의 한숨도 커진다.
24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밀가루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6% 올랐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릴 정도로 주요 곡물을 공급해온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를 보면, 전 세계 곡물 시장에서 두 나라의 밀 점유율은 27%에 달한다. 이달 들어 두 나라가 밀 등 주요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면서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밀 가격 폭등을 우려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밀가루 사재기’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파스타와 피자 등을 판매하는 한아무개(53)씨는 “밀가루 가격이 이미 많이 올랐는데, 더 오를 것 같아 미리 사놓으려고 한다”며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줄어 재룟값이 올라도 음식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밀가루를 미리 쟁여놨다”, “매출도 줄었는데 재룟값까지 오르니 힘들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밀가루 가격 상승은 빵·라면 등 품목에도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라면(10.3%), 파스타면(13.2%), 국수(28.1%), 부침 가루(30.7%) 등의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두 자릿수로 상승했다. 밀가루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 추가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프랜차이즈 제과 업체 관계자는 “현재는 미리 확보해둔 양이 있어 큰 문제가 없지만, 밀가루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23일 성명을 내어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큰 폭의 가격 인상이 이루어졌던 라면, 과자, 빵 등 밀을 주요 원재료로 하는 가공식품 가격이 올해 또 인상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밀 가격 상승이 가공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업체에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연어 등 수산물도 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당에서 연어가 들어가는 메뉴가 가격이 오르거나, 메뉴판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노량진 수산물도매시장 수산물 가격 동향을 보면, 이달 3주차(3월14일~3월19일) 연어 가격은 ㎏당 2만31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1400원)에 비해 102.6% 올랐다. 전쟁으로 러시아 항공로가 폐쇄돼 노르웨이산 연어의 운임비가 상승해서다. 러시아산 킹크랩과 명태 가격도 올랐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조수남(37)씨는 지난주부터 연어 덮밥을 아예 판매하지 않고 있다. 조씨는 “연어 가격이 너무 올라 한동안 손해를 감수하고 팔다가 결국 판매를 중단했다”며 “가뜩이나 손님이 줄었는데 연어 메뉴가 없다고 나가는 분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인근 연어 무한리필 전문점에는 ‘한동안 연어는 리필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직원 이유진(38)씨는 “연어를 무한리필 메뉴에서 제외한 뒤로 손님이 반 이상 줄어 요즘은 하루에 다섯 팀도 못 받을 때가 많다”며 “장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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