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일기는 궁궐과 관청에 그릇을 납품하던 공인 지씨가 21년 동안 자신의 사업과 삶에 대해 적은 글이다. 사진은 조선 후기 그릇을 지게에 지고 다니며 팔던 장삿꾼의 모습
공인 지씨 ‘하재일기1’ 한글본 나와
뗏목과세 저항·불량소년 이야기도
뗏목과세 저항·불량소년 이야기도
19세기말 조선에서 지방 군수직을 돈으로 사는 데는 현재 돈으로 대략 1억원~1억5천만원 가량이 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양평 지역의 뱃사람과 나무장수들은 뗏목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춘천 유수(시장)를 동원한 저항 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가 최근 펴낸 한국어 번역 <하재일기(荷齋日記) 1>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공인(貢人·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사람) 지씨(본관이 충주이나 이름과 생몰연대는 확인 안 됨)가 평민의 눈으로 본 조선 말기 사회상을 담고 있다. 지씨는 궁궐과 관청에 사옹원(궁궐의 식사 물품을 공급하는 중앙 관청) 양근(지금의 양평) 분원의 그릇을 공급했던 ‘공인’으로 1891년부터 1911년까지 21년 가량(중간에 3년치가 빠져있음)의 한문 초서로 일기를 썼으며, 이것은 현재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조선 시대 평민의 기록이 남아있거나 번역된 것은 드문 일이다.
시사편찬위가 번역한 <하재일기1>은 1891년1월부터 12월까지의 일들을 다뤘으며, 당시 자신의 사업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1월5일 일기를 보면 이웃 서시운의 집에서 불량한 소년들이 북을 울리며 시끄럽게 놀자, 이웃 노인이 “지금 (조 대비의) 국상을 당한 때”라고 말렸으나, 그들은 계속 소란을 피우고 떠들었으며 밤중에 노인의 집 문짝을 부수고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1월~3월엔 유성안이라는 사람이 양근 분원의 자금줄이었던 뗏목에 대한 과세를 반대하며 뱃사람과 나무장수들을 선동했으며, 강원도 춘천 감영(도청)에서도 이에 동조해 세금을 혁파하라고 지시한 일도 나온다. 그러나 분원과 거래하는 지씨는 중앙의 사옹원에 가서 뗏목 과세의 필요성을 역설해 다시 세금을 복원하도록 하고 선동한 자들을 잡아들이도록 했다. 춘천 유수와 사옹원 공당 사이에 빚어진 갈등은 결국 사옹원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이 일기에는 관직매매 사례도 들어 있다. 8월에 오위장 염석하가 강원도 평해군수가 되려고 하자 지씨는 현수안과 심주사에게 부탁했는데, 뒤에 종정부 김선달이라는 사람이 “이미 의논했는데, 들어가는 돈이 3만3천냥이고 강원 감영의 구획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냥이 요즘 돈으로 3천~5천원 정도로 추정되므로 강원도의 군수 자리를 사는 데는 1억~1억5천만원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편집·교열한 시사편찬위의 박은숙 연구원은 “현재 전해지는 대부분의 조선 때 책들은 양반의 저작인데 비해 이 책은 당시 40대로 추정되는 평민의 일기로 백성들의 삶과 시각이 잘 드러났다”며 “초서로 쓴 일기와 칠언절구 시 등은 조선 후기 부유한 평민들의 지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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