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종교 교리가 아닌 비폭력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병역거부자에게 처음으로 무죄 확정판결을 내린 지난해 6월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도가 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식인 침례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현역병 입대를 거부했다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ㄱ씨는 2018년 2월12일, 육군학생군사학교 현역(의무장교)으로 일주일 뒤 입영하라는 현역입영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했고,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성경 구절과 교리를 이유로 군사훈련과 집총을 거부해왔다.
1심은 ㄱ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ㄱ씨가 어머니 영향으로 신앙을 접했지만 혼자 살게 된 2009년부터 이 종교 정기집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2018년 병역을 거부한 뒤 2020년 8월에서야 침례를 받아 신도가 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그가 입영을 거부한 것은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없고 입영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침례는 여호와의 증인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다른 신도들로부터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절차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ㄱ씨가 어머니 등 영향으로 이 종교 교리를 접하며 성장했고 1998년 이 종교 한국지부 견학 행사에 참석한 뒤 현재까지 성경과 교리에 어긋남 없이 성실히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며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ㄱ씨가 2011년부터 수혈거부 교리를 지키기 위해 ‘사전 의료지시 및 위임장’을 소지했고, 웹하드 및 게임 업체에 가입한 사실이 없어 종교 신념에 반하는 음란물이나 폭력물을 시청했다거나 폭력적 게임 등을 이용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2018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기 전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해 형사처벌 가능성이 매우 컸으나, ㄱ씨는 이를 감수하고 병역거부 의사를 표시했고, 대학에 진학한 뒤 잠시 종교적으로 방황했지만 2018년부터 회심해 성서연구 등에 참석하며 종교생활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며 ‘ㄱ씨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점’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ㄱ씨는 병역법상 규정된 대체복무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며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2018년 11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해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해 6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국회는 2019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역 신설을 둔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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