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병찬씨가 지난해 11월2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식을 앞장세운 부모의 심정은 피눈물이 흐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 가족의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봄이 왔지만 저희 아이는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세상에 없습니다.”
‘스토킹 살인범’ 김병찬(36)씨의 손에 딸을 잃은 부모는 준비해온 글을 읽다 눈물을 쏟았다. 피해자 부모의 애끊는 호소에도 김씨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정진아) 심리로 28일 열린 김씨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등) 혐의 사건에 양형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ㄱ씨의 부모는 “딸이 세상을 떠난지 모르고 중매가 들어오면 너무 슬퍼진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아직 가슴에 묻히지 않는다”며 김씨에 대한 엄벌을 요청했다.
ㄱ씨는 지난해 11월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을 스토킹하던 김씨의 손에 숨졌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ㄱ씨는 전 연인이었던 김씨에게 그해 6월 이별을 통보한 뒤 김씨의 지속적인 스토킹에 시달렸다. 폭행과 협박,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 같은 범행으로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잠정조치를 통보받았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ㄱ씨를 살해한 것이다. 당시 ㄱ씨가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로 두 차례 경찰에 구조요청을 보냈으나, 경찰이 다른 곳으로 출동하면서 ㄱ씨를 구하지 못했다.
ㄱ씨의 부모는 반성 없는 김씨의 태도에 울분을 터뜨렸다. 범행 전날 모자와 흉기를 준비한 김씨는 ㄱ씨를 사건 당일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ㄱ씨의 집에 무단침입하고 피해자를 감금·협박한 혐의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에게 사죄의 뜻을 표시한 적도 없다고 한다. ㄱ씨 아버지는 “저희도 저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고, 숨만 쉬고 있을 뿐 산 목숨이 아니다”라며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말했다. 딸이 사준 신발을 신고 법정에 나온 ㄱ씨의 어머니는 “엄마, 아빠가 너무 슬퍼하면 딸이 좋은 곳에 가지 못할까 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한다”고 흐느꼈다. ㄱ씨의 동생과 친척도 방청석에 앉아 눈물을 쏟았다.
유족의 호소를 들은 재판부는 “유족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건강 잘 추스르시기를 바란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음 재판은 다음달 11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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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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