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오스템임플란트·계양전기·엘지(LG)유플러스 등에서 경영자가 아닌 일반 직원에 의한 대형 횡령 범죄가 줄줄이 발생하고 있다. 주식·가상자산 투자 광풍 속 한탕주의와 부실한 관리·감독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30일 경찰청은 지난해 형법상 횡령죄 사건이 5만386건 발생핬으며, 횡령 규모는 6조7904억원에 달한다고 잠정 집계했다. 최근 5년간 횡령액을 보면 2조7248억원(2020년)에서 7조6886억원(2017년)까지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발생 건수는 매해 5만건대로 꾸준하다.
올해 1분기 횡령액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2600억원에 이른다. 역대 상장사 횡령 범죄 중 규모가 가장 큰 오스템임플란트 사건(2215억원)은 전 재무팀장이, 서울 강동구청 115억원 횡령 사건은 7급 공무원이 저질렀다. 지난 16일엔 계양전기에서 회삿돈 245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30대 직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달 들어 엘지유플러스 팀장급 영업직원이 수십억원을, 화장품 회사 클리오 영업직원도 2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중견기업과 대기업, 공직사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 대형 횡령 범죄는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확대로 나타난 주식·가상자산 투자 열풍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오스템임플란트·강동구청·계양전기 횡령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횡령액을 주식 투자 등에 썼다고 진술했다.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과 강동구청 공무원은 고위험·고수익 투자 방식인 주식 미수거래에 손을 댔고, 계양전기 직원은 주식과 코인 투자 등에 횡령한 돈을 썼다고 한다. 지난 1월 대구지법 형사10단독(이정목 판사)은 차량 대리점에서 판매대금 1억4천만원을 횡령해 해외 선물투자 등에 쓴 영업사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는 등 투자 목적 횡령 사건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주식·가상자산 투자 열풍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은 한탕주의로 이어진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더는 직장생활만으로 집을 사고 자산을 불릴 수 없다는 박탈감, 각종 주식·코인 투자 성공 소식은 이른바 포모(FOMO·기회나 흐름을 놓치는 것에 대한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런 심리가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게 낫다는 한탕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횡령 사건 관련자 중에는 “차라리 몇 년 감옥에서 살고 나와 부자 되는 게 이득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허술한 회계 감시 체계도 횡령을 부추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증거를 남기지 않고 돈을 빼서 사용하고 채워 넣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주식·코인에 투자해 돈을 벌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업 내·외부 감시 체계가 한탕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회계 업무를 일부 직원이 독점적으로 맡아서 하지 않도록 분산해 관리해야 하고, 형식적인 외부 감사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는 “근본 원인은 이사회가 회계 감사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제기 안건에 찬반 표시만 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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