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국경너머 인권 대표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당신의 책은 우리에게 무기와 같다. 우리 인권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실’과 ‘합당한 언어’를 줬다.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을 것이다.”
이경은 ‘국경너머 인권’ 대표가 지난해 말 영문 저서 <국제 ‘고아’ 입양 시스템:그 기원과 발전에 미친 대한민국의 영향>(뿌리의 집)을 낸 뒤 벨기에 입양인 레슬리 매(한국명 박강수)로부터 받은 메시지다.
이 대표는 재작년 10월 국제입양인 권리옹호 단체 ‘국경너머 인권’을 만들고 바로 공동설립자인 로스 오크(한국명 박수웅), 강태리 변호사와 함께 자신이 2017년에 쓴 서울대 법대 박사논문(국제입양에서 아동권리의 국제법적 보호)의 영문판 출간에 착수했다. 번역은 강태리 변호사가, 편집은 입양인 당사자로 한국에서 입양인 권리옹호 운동을 해온 로스 오크가 각각 맡았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입양인들을 위해 영문으로 냈죠. 책을 내고 국제입양인들이 보낸 메시지를 수십 통 받았어요. 입양된 나라에서 정보 공개로 얻은 한국어 입양 서류 내용이 구체적으로 뭔지, 서류에 기재된 내용의 법적인 근거가 뭔지를 묻는 메일이 많았죠.”
지난 25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가 지난해 말 낸 영문 저술. 이경은 대표 제공
행정고시 38회로 청소년위원회, 보건복지부 등에서 22년 공직을 수행한 이 대표는 2018년 엔지오 활동가로 변신해 그해부터 2년 동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그가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 있던 2012년에는 아동입양의 최종결정을 국가 기관인 가정법원에서 내리도록 하는, 한국 아동입양사에서 획기적인 법제가 마련됐다. 그 전까지 국제입양은 친·양부모와 입양중개기관 즉, 사적 주체의 결정에 오롯이 맡겨졌다.
‘뿌리를 알 권리’를 내세우는 국경너머 인권은 국제입양인이 자신의 혈연이나 문화, 언어 등 정체성을 찾고 또 입양 전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도록 돕는 단체다. 재작년에는 ‘입양인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강연과 워크숍을 두 차례씩 했고 작년에는 국내 영자지 <코리아타임스>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꾸려 이 대표와 국제입양인 15명의 글을 소개해 반향을 얻었다. “제가 국제입양 법과 역사, 제도를 알리면 입양인들이 그게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했죠. 처음엔 아는 입양인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원고가 몰려 선별해 실었어요.”
그는 작년 5월에는 자신의 국외 입양이 위법했다며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2019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아담 크랩서 사건 변호인단 요청으로 에이4 50쪽 분량의 전문가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미국 입양 뒤 양부모에게 버려져 시민권을 얻지 못한 크랩서는 입양 37년 뒤인 2016년 미국에서 추방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해 브라질 출신 네덜란드 입양인이 입양 과정의 불법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며 자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겼다”며 4년째 1심이 진행 중인 ‘아담 크랩서 소송’에 한국에서 태어난 20만 국제입양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했다. “국제입양 과정에서 대부분 크랩서와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죠.”
재작년 만들고 강연·기고 등 활동
국제입양인 ‘뿌리 찾기’ 도와
‘한국이 국제입양 이슈 몸통’ 밝힌
박사 논문 지난해 영문 출간도
“2020년 한국 국제입양 3위 올라
기아호적·대리입양 등 문제 조사를”
그는 영문 저술에서 국제입양의 역사와 국제규범 발전사 등을 다루면서 왜 한국이 국제입양 이슈의 몸통인지 살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지금도 국제입양을 보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해요. 코로나 팬데믹 영향을 받은 2020년 통계를 보니 한국이 중국과 인도를 누르고 국제입양 송출국 3위에 올랐더군요. 전년도엔 7위였죠. 숫자도 254명에서 266명으로 늘었어요. 한국 국제입양 시스템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사례죠. 코로나도 한국 아이들의 국제입양을 못 막았어요.”
이경은 대표(왼쪽부터)와 강태리 변호사, 로스 오크 입양인 인권옹호 활동가. 국경너머 인권 홈페이지 갈무리
그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며 시작된 국제입양을 ‘시장 원리에 의한 제2 국제입양 물결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그리스 등 유럽 전쟁고아들을 대규모로 미국에 보낸 게 ‘제1 국제입양 물결’이라면, 한국의 국제입양은 입양대상 아이들이 양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1~2년 영유아였고 사적인 입양기관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럽이 1967년에 공적 기관 개입 없이 사적 기관의 중개로 이어지는 입양을 금지하는 유럽 아동입양협약을 만든 것도 영향을 미쳤단다. “유럽은 아동 이익 최우선 원칙에 따라 국제입양을 규제했지만 우리는 국제입양의 절차와 기준을 대폭 간소화해 사적 기관의 입양 중개를 도왔죠.” 그는 한국 정부의 ‘입양 사업’ 부양을 잘 보여주는 예로 대부분 ‘혼인 외 출생’인 아이들에게 부모 정보를 기재하지 않는 ‘기아호적’을 발급해 고아로 만든 점과 외국 양부모가 아이를 직접 보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입양할 수 있도록 ‘대리입양 제도’를 허용해준 점을 꼽았다. “1976년부터 2014년까지 기아호적이 14만5천 건 발급됐고 이 기간 국외 입양은 13만5천건이었어요. 숫자가 거의 비슷해요. 기아호적이 국제입양을 위해 고아를 만드는 제도로 악용된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조사할 필요가 있어요.”
그가 보기에 한국 정부는 지금도 아동의 국제입양을 사적 입양기관의 사업 영역 안에 유지하는 정책 기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있다. 1993년 체결돼 100개국이 비준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가입을 미루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단다. “헤이그 협약에는 보충의 원칙이 있어요. 국제입양은 가족관계 변화뿐 아니라 국가의 국민보호 원칙과도 연결돼 아이한테 너무 큰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꼭 필요할 때만 하라는 거죠. 협약을 지키려면 가정의 보호에서 벗어난 아동은 국가가 책임지고 ‘대안양육’ 혹은 ‘대안가정’을 제공하고, 가능한 한 최상의 양육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법과 제도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요. 소방이나 경찰 분야 수준으로 아동보호 정책도 작동한다면 국제입양은 사라질 겁니다.”
계획을 묻자 이 대표는 “한국 정부가 국제입양을 위해 불법적으로 기아호적을 만들고 대리입양을 허용해준 문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누구 책임인지 따지겠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입양을 위해 아이들의 정체성 정보를 의도적으로 지웠어요. 당시 기아호적을 보면 하나같이 본적은 입양기관이고 호주는 아이 이름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