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분양을 위해 견본주택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연합뉴스
조합원 지위나 입주자저축 증서를 사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주택을 분양받은 이에게 공급자가 분양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옛 주택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분양계약이 취소됐다면 이를 모르고 해당 주택을 사들인 제3자와의 계약도 취소된다는 것이 주택법 입법 취지라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3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옛 주택법 39조2항에 대해 제기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옛 주택법 39조 1항은 주택을 공급받기 위해 조합원 지위, 주택상환사채, 입주자저축 증서 등을 사고팔거나 넘겨받는 행위를 금지했다. 만약 이를 어겨 주택을 공급받았다면 같은 법 2항에 따라 공급자는 주택 공급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주택공사(SH)는 2014년 10월 ㄱ씨와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를 두고 분양대금 3억7220만원에 주택분양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10월에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ㄱ씨는 ㄴ씨와 4억1800만원에 이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공사는 옛 주택법 39조 1항에서 금지하는 ‘공급질서 교란행위’를 ㄱ씨가 했다는 이유로 2015년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분양계약을 취소한다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고, 이들을 상대로 소유권이전 등기 말소소송을 냈다.
이에 ㄴ씨는 자신이 선의의 제3자에 해당해 분양계약이 취소돼도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항변했으나, 2018년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ㄴ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옛 주택법 조항이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지 않는 것은 재산권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이듬해 10월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서울고법에 했다. 서울고법도 “주택 전매행위 제한 경우와 달리 이 조항이 선의의 제3자 보호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입법한계를 일탈했다는 합리적 위헌의 의심이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은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사업주체가 공급질서 교란자와 체결한 주택공급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를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조처”라며 “공급질서 교란행위에도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한다면 거래 안전성 증진에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분양단계에서 훼손된 투명성과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입법형성권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 않아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은애·이미선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선의의 제3자 관점에서 자신의 주택이 공급질서 교란행위에 기초해 공급된 주택이라는 점은 우연한 사실에 가까우며 이로 인한 책임을 선의의 제3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주택법 개정으로 제3자 보호규정이 신설된 점 등을 들어 “집을 산 양수인이 주택공급자의 주택공급계약 취소권 행사에 대항할 어떤 수단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자에게 통제받지 않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의 이념에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합리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이 조항은 선의의 제3자 재산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한편, 옛 주택법은 2021년 3월 공급질서 교란행위를 이유로 주택공급계약을 취소했을 때, ‘선의의 제3자 보호규정’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공급질서 교란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주택 또는 주택의 입주자로 선정된 지위를 취득한 매수인이 해당 공급질서 교란행위와 관련이 없음을 소명하는 경우에는 공급계약을 취소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