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산에 사는 발달장애인 ㄱ(24)씨는 지난해 11월 일산 서부경찰서에 직장 동료들을 고소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욕설과 폭력 등 직장 내 괴롭힘을 참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발달장애인 지원법은 각 경찰서에 발달장애인 전담 사법경찰관을 지정해 이들이 발달장애인을 조사 또는 심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ㄱ씨는 일반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았다. 해당 경찰서에는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2명 있었지만 수사 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정되지 않았다. ㄱ씨는 수사관 기피 신청과 이의 제기를 거쳐 두 달 만에 담당 수사관을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지적·자폐장애인)이 피해자, 혹은 피의자인 사건에서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해 사건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해 도입한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용돼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제도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겨나는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지난 2015년 도입된 제도다. 각 경찰서에선 수요에 따라 1∼4명씩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을 두고 있다. 경찰청은 2021년 기준 전국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1009명이며, 이들이 조사한 사건 수가 1678건이라고 6일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선 “전담 경찰관이 수사를 맡은 과와 다른 과에 있어서” 등의 이유로 발달장애인에게 전담 경찰관이 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은 여성청소년과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은데, 발달장애인이 수사과나 형사과에서 수사를 받을 경우 ‘부서 칸막이’ 때문에 전담 경찰관에게 수사를 맡기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지난 1월 경찰에서 평택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신아무개(58)씨는 동물학대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는데, 수사과정에서 신뢰관계인 동석은 물론 전담 경찰관 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에 대해 “코로나19 상황으로 각 과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사를 맡은 형사과가 여성청소년과에 속해있는 전담 경찰관의 조사를 요청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고, 이를 맡게 된 안성경찰서는 그제야 신씨에게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을 배치했다. 신씨의 조사에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한 김영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는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아닌 수사관이 진행한 수사에도 동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전담 경찰관의 수사는 달랐다”며 “조사받는 장애인과 라포 형성을 하기도 했고, ‘힘들면 언제든지 쉬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기 전 질문에 대해 육하원칙으로 대답하는 연습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경찰 내에서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기류도 있다. 통상적으로 연차가 낮고 수사경험이 적은 수사관이 돌아가며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을 담당한다. 교육도 사이버 강의 2종과, 1년에 한두 차례 실시하는 시도경찰청 교육 등에 그친다. 전담 경찰관이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발달장애인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어 경찰이 전담 경찰관 제도를 현장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2016년 21만8136명에서 2020년 24만7910명으로 4년 새 13.65%(2만9774명) 증가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보완책을 고심 중이다. 지난해 12월 인권위는 경기 안산에서 경찰이 발달장애인에게 뒷수갑을 채워 연행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장에게 발달장애인 대상 현장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배포할 것을 권고했으며, 최근 경찰은 권고를 수용하겠다며 이행계획을 인권위에 제출했다. 배성진 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스토킹수사계장은 “국가수사본부 차원에서 사회적 약자와 발달장애인에 대해 인권 보호를 개선하기 위한 내실화 작업을 하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속하지 않은 과에서 이뤄지는 수사라도,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을 부수사관으로 지정하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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